아티스트 고은: 안 보이는 사람의 힘 사용법

Art / 배우리 기자 / 2018-05-03 10: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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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잘라내야 하는 뿔을 나무를 통해 살려내야만 하는 건, 그녀의 투쟁이자, 매일의 수행이자, 삶이다.
 constant pain & endless pleasure_37×37×45cm_여러수종의 나무, 석고_2015

 

예전 모습을 간직한 오래된 한옥의 대문으로 들어가면 자라나는 풀들을 그대로 둔 마당이 있고, 전시된 듯, 무심코 놓인 듯, 고은 작가의 작업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시인이자 목사인 아버지와 잡초 요리 연구가이신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그녀가 예쁜 찻잔에 타준 건 들깨차였다. 따뜻함과 함께 입 안 가득 퍼지는 꾸미지 않은 고소한 맛과 은은한 꿀 향이 마실수록 진해지는 차다. 남은 들깨가루들을 미처 다 긁어 먹지 못했다. 아마, 작가와의 짧은 만남에서도 그렇게 가루를 남겼을 것이다. 남긴 가루들이 자꾸 아쉽다. 또 마시고 싶은 차고, 또 보고 싶은 작품과 작가다. 


느리잇한 숨


그녀는 지난 10월에 있었던 개인전, <사람의 힘 사용법>을 준비하는 데 꼬박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작업의 시작은 ‘시도 아니고 수필도 아닌’ 짧은 글이었다. 수 년 간의 고민을 단숨에 토해낸 글이었지만, 토하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마주한 그 글의 내용은 너무나 방대하고도 모호했다. 그녀는 천천히 드로잉을 시작했다. 완벽한 드로잉이다 싶어도, 정해 놓은 나무가 그 드로잉의 조각이 되기를 거절하면 할 수 없이 물러나야했다. 그리고 그 드로잉을 선택하는 나무를 다시 만나기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나무들을 끼워 맞출 때도 서로 어울리지 않겠다고 하면 억지로 엮지 않는다. 그녀는 나무에게 강요하지 않고 나무가 하는 말을 들었다. 작업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그녀는 독대한 자신도, 나무도 결코 닦달하지 않는다. 

 

 경험적 자아 1_101×44cm_여러수종의 나무_2015

 

지상의 풍경 4_ 67.5×51cm_여러수종의 나무_2015

나무는 성질 있다. 작가가 내민 드로잉을 단번에 거절하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손길이 닿으면 결이 그대로 찢어지고 만다. 작가가 나무를 주재료로 택하게 된 것도 점토보다 불평이 많기 때문이다. 나무가 아무리 삐쳐도 그녀는 결국에 나무를 설득할 형상을 그려내고, 아무리 까다롭고 단단해도 그녀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도록 잘 달랜다. 그런 주고받음에서 작업의 시너지가 생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나무는 버려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이 땔감이 될지언정, 그것 역시나 쓸모 있음이다. 하릴없이 쓰레기 더미에 쌓여있지 않아도 된다. 재활용 가능한 나무, 그녀가 나무를 만지는 이유다.


그녀의 작업도 재활용 나무를 되살린 경우가 많다. 이웃이 버린 원목 테이블이며, 이사 온 집에 남아 있던 커다란 바둑판도 그녀의 손에서 작품이 되었다. 단단한 것들을 선호하지만 수종도 관계없다. 완성된 작품이라도, 나무가 원한다면 다른 작품으로 다시 만들어준다. 그녀의 손에서 나무는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하면서 느린 숨을 내쉰다.


바다와 뿔과 톱


 사람의 힘 사용법 2_ 톱, 은행나무에 채색_17×21×59cm

작품에는 ‘바깥’ 세상을 연상할 만한 어떤 기호도 없다. 그저 조용히 나를 마주해 볼 뿐이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누구나 내면에 지니고 있는 어떤 ‘힘’을 발견하고, 그 힘을 서로의 관계 속에서 사용할 방법을 익히는 첫 걸음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이기적이다’라고 말한다면, 작가는 억울하다. 그녀는 확실히 내면으로,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지만, 너무 깊이 파고 들어가서 이미 반대편으로 뚫고 나온 지 오래다. 아마 이기적이란 단어를 꺼낸 그 사람은 작가들의 앞모습만 보고 뒤에 난 구멍은 보지 못한 모양이다. 내면과 외면, 개인과 사회를 분리하는 사람이라면, 영원히 고은 작가의 바깥과 연결된 깊은 구멍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작가가 세상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작은 위로와 작은 변화를 원한다는 것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내면을 조각해 본 사람이라면, 이기적인 작업이야말로 타인을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시작된 변화1_installation, 자작합판에 아크릴, 감속모터_2016

그녀의 작업을 더 파헤쳐 보자. 그녀의 작업에는 머리에 뿔은 단 푸석한 나무 인간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머리에서 매일매일 자라는 뿔은 거짓 ‘자아’, 말하자면 부질없는 기표다. 자신의 진실 된 모습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뿔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기르고 다닌다. 뿔의 무게에 눌려 목이 꺾이고, 머리가 바닥에 처박히기 전까지 그 뿔로 자신을 입증하려 한다. 뿔이 없다는 것은 홀로 고독하게 세상을 등져야 하는 것임을 막연하게나마 느끼는 사람들은 뿔 없는 불안을 외면하기 바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는 망망대해 위에서 그 뿔이 너무나 거추장스러운 것임을, 결코 내 짐이 아님을 깨달았다. 자르기로 결심했다. 짐을 버리면, ‘힘’을 얻는다. 그녀는 매일 자라는 뿔을 수도 없이 잘라냈다. 그런데 잘라도, 잘라도 다시 자란다. 뿔과의 싸움에서 놓여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마 죽는 순간이 될 것이다. 

 

 뿔속관찰기_여러수종의 나무, 합판에 아크릴

 

 뿔속관찰기_여러수종의 나무, 합판에 아크릴

뿔을 자르는 도구는 톱이다. 당연한 이치로, 그녀의 손엔, 아니 그녀가 만든 인물들의 손에는 으레 톱이 들려 있다. 톱은 날카롭다. 누구든 잘못 쓰면 다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그 날카로움을 이용하지 않으면 자신을 깎아낼 수 없다는 것을 인물들은 잘 안다. 결국 항상 깨어있는 채로 날카로움을 경계하면서도 그것을 나의 ‘힘’에 복속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에 성공한 인물들도 있다. 뿔을 얹고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공중의 톱 위에서 날카로움을 디디고 서서 뿔이 자랄 여지도 주지 않고, 온화하게 균형 잡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녀는 공중 톱 시리즈를 계속 해나갈 예정이다. 춤추는 사람, 누워서 하늘을 보는 사람들이 톱 위에 올려 질 것이다. 


바다와 뿔과 톱은 단순한 개인적인 감상이 아니다. 이미 균형을 잡은 사람이라면, 고은의 작품을 보며 흐뭇할 것이고, 톱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라면 외롭지 않다는 위안을 얻을 것이고, 아직 뿔을 기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 뿔이 그간 무겁지는 않았는지, 잠시 생각할 여유를 가지게 될 것이다. 무상함에 대해 아주 잠시 사유하는 것은 어떤 기부보다 더 큰 공덕이라 하였다. 우리의 행동을 바꿔줄 순간의 ‘사건’을 선물하는 작가가 과연 이기적일까. “내면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바깥을 위한 행위도 할 수 없다”는 작가의 말이 울린다. 


조화로운 삶


 시작된 변화1_installation, 자작합판에 아크릴, 감속모터_2016

언젠가 그녀는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을 읽고서 그야말로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엮어 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앞으로의 계획도 ‘조화로운 삶’ 속에 스며있다. 그녀는 식물이나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더욱 천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욕심 없이 시 짓는 아버지와 마당에서 먹을거리를 얻어내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원주의 불편당(不便堂)은 그런 삶과 작업에 아주 제격인 공간이었다. 그 안에 작게 자리 잡은 그녀의 작업실 스튜디오 B도, 장독대도, 풀도, 함께 사는 개 동이도 모두 조화로운 삶을 도울 것이다. 작업 소음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이웃들까지도 말이다. 단단한 나무들과 상대했던 지난 전시의 후유증으로 아직은 나무 이야기 대신 자신의 몸 이야기를 듣는 중이지만, 자연과 음악과 책은 늘 곁에 두고 있다. 

 

 사람의 힘 사용법 3_40×78×9cm_여러수종의 나무, 동기모터_2016

욕심 없이, 사심 없이 살고,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한 아이디어 구상을 위해서다. 그리고 슬근슬근 톱질한다. 그녀는 최근 손에 쥐고 있는 파블로 네루다가 말하는 것처럼 계속 그렇게 ‘사랑하고 노래하고 (작업으로) 투쟁’할 것이다. 몸이 다시 원하면 작가는 다시 쓸모없이 버려진 나무들에게 다가가 인사하며 나와 작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할 것이다. 물론 작품을 풍성하게 해 줄 나무를 ‘구매’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작업을 위해 잘렸을 새 나무에 대한 기도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도는 다시금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으로 태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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