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당, 우리 가구로 채운 한옥

Interior / 배우리 기자 / 2018-06-18 14: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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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담이 자리할 때만 해도 빨래터는 흔적으로만 남아있었다. 동네 아낙들이 그곳에서 흘려보냈던 이야기에 대한 기억도 하나둘 사라지던 터였다. 하지만 토담에 오래된 새집이 지어지고, 빨래터가 새 얼굴을 가지면서 이웃과 선대의 존재는 더 이상 까마득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난 것들은 가구에도 남아있다.

 

팔당호의 안개가 스미는 함양당은 재작년 우드플래닛에서도 소개했던 책 <나무집예찬>의 바로 그 ‘나무집’이다. 화가 김병종이 연극연출가 김정옥의 토담을 사들이고 훗날 왕십리의 백여 년 가까이 된 고옥을 해체해 다시 지었다. 이제 그곳에 유나컬렉션의 권연아 씨 부부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금은 태어난 아기를 위해 판교의 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겼지만 함양당은 여전히 다양한 문화행사와 모임의 공간이다.
 

가랑비처럼 스민 목가구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흐린 날, 함양당을 찾았다. 주인도 부재하고 살림살이는 두 달 전 쯤 거의 빠져나가 허전했지만 <나무집예찬>에서 담 너머로 집 안을 훔쳐보듯 보았던 한옥의 정취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돌담이며, 김병종 화가의 작품을 따온 낮은 대문, 뒤뜰의 오래된 은행나무, 그리고 젊은 부부가 들어오면서 다시 꾸민 오래된 동네 우물터, 수국과 풀들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막상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 것의 손길을 받아 옛집이라고 하기에 나무는 밝고, 시스템 창호도 낯설었지만 100년을 살아온 한옥은 그 덕에 지금도 살아가고 있었다. 

 

 

주인 내외의 한옥과 목가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안주인의 아버지는 바로 이웃에 살고 있는 골동품 애호가이자 도예가고 바깥주인의 어머니는 부산의 문화공간 비비비당의 대표다. 이러하니, 어떤 계기랄 것도 없이 어렸을 때부터 부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목가구와 가까웠고,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돌계단을 디디고 올라 세월을 벗겨낸 뽀얀 인절미 같은 마루를 밟았다. 마루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움직임의 흔적이 드러난다. 진짜 나무집. 비었지만 충만한 여전한 삶의 공간. 나무집이 살아있듯 집 안에는 ‘물건’들도 오랜 세월을 딛고 살아남았다. 살림살이가 있던 시절 부엌이었던 방에는 ‘만취당’ 족자 아래 오래된 상주곶감 궤가 낮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고, 귀한 백자가 아무도 보지 않음에도 곳곳에서 꼿꼿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바닥에만 앉아야 할 것 같은데 드문드문 놓인 중국의자들까지. 그런 고고한 물건들 사이에 10년 전 이곳 퇴촌에 터 잡고 가구를 만들고 있는 방석호 목수의 가구들도 섞여있다. 오동나무와 참죽으로 만들어 옻칠을 한 전통 책장과 오크로 짜맞추고 암모니아로 마감한 선반, 붉은 빛이 아름다운 경축장이 그것이다. 이 집 안주인은 골동품 애호가이자 도예가인 아버지를 통해 목수를 알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몇 점 집 안에 들여놓게 되었다.

 


일상의 유산 


권연아 씨의 집안이 방 목수와 서로 왕래하는 사이다보니 필요한 가구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를 찾게 된다. 오동나무 책장은 원래 아이 벽에 맞게 두 개를 주문했는데 하나는 아파트로 가져가고 하나가 남아 있다. 쓰임을 위해 만든 것이지만, 은은하게 빛이 들어오는 창호 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색색의 아이 책이 있었다면, 오히려 그 청초함은 빛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고가구에 둘러싸여 사느라 오크는 조금 낯설지만 목수가 암모니아 마감까지 끝낸 것을 가지고 왔을 때 고재의 은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는 불경의 두루마리를 넣어놓는 붉은 빛깔의 경축장은 그릇장이 되어 있다. 1년 전 목수가 만든 것으로 알판 일일이 박힌 운각에 비하면 과하지 않은 가격이었기 때문에 수집 개념으로 들인 것이다. 이렇게 한옥에 남은 가구들은 전통 공연이나 행사가 있을 때면 무대가 되어주곤 한다.

 

 

같은 전통을 모티브로 한 가구라고 하더라도 색도 디자인도 다양하게 구현되고, 공간에 따라서도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권연아 씨 부부 집에 놓인 가구들은 산업사회의 질료들로 확장되지 않았지만 예스러움 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그 자체의 시간과 공간을 확장한 것처럼 보인다. 가구가 내적으로 파고들어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견고한 일상의 문화가 유행에 파묻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한옥에서든 아파트에서든 마음 놓고 일상에서 물려받은 전통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목수의 미감도 이를 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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