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목 가득한 목수 이무규의 집

Interior / 배우리 기자 / 2018-06-11 19: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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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대가구 1세대 목수 이무규의 집. 이 집의 가구들은 그와 그의 이름 ‘무규’를 닮아 ‘ㅁ’, ‘ㅜ’, ‘ㄱ’, ‘ㅠ’로만 이루어졌다. 겉보기엔 무뚝뚝해 보이는데 꽤나 상냥하다.

현관에 들어가자마자 네모난 콘솔이 있다. 현관에 있어야 할 이것저것을 담으라는 배려다. 그리고 신발장 앞에 무심하게 놓인 작은 벤치는 신발을 신고 벗는 사람을 맞아주고 배웅한다. 이런 친절한 가구들의 주인은 가구보다 더 친절한 목수 이무규다. 그를 가구로 이끈 건 정직함이다. 판화를 했지만 작품에 가격을 매겨 파는 것이 왠지 거북했던 그는 걸어서 보는 게 다인 작품과 달리 일상에서 계속 쓸 수 있다는 가구의 정직함에 끌려 지금껏 목수로 살아오게 된 것이다.


목수가 사랑한 네모



목수 집에 있는 모든 가구든 네모다. 십여 년 전에 만든 동그란 테이블 하나를 제외하고는 직각뿐이다. 이무규의 가구는 왜 네모뿐이냐고 묻는다면 그의 풍채가 답이다. 하얀 수염을 기른 그가 서있거나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면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그의 가구는 그냥 그다. “다른 사람들이 디자인을 바꿔라 어쩌라 해도 일부러 안 바꾸고, 보통 내 스타일대로만 만들지. 그냥 네모가 무난할 거 같아서 말이야. 곡선보다 직각들이 좋더군” 군더더기나 용도를 벗어나는 장식을 좋아하지 않는 그에게 ‘동글동글’한 것은 취향에 맞지 않았다. 손잡이마저도 두툼한 네모다. 특히 테이블이라면 그냥 깔끔해야 한다. 모든 가구가 육중한 직선과 묵직한 다리를 드러내고 있지만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다. 벤치는 엉덩이에 맞게 가운데가 쏙 들어간다. 반듯한 직선을 좋아하지만 엉덩이에게 긴장을 강요할 만큼은 아니다. 현관부터 느끼지 않았던가, 배려의 목수라는 것을.

 

 

벤치 외에 별다른 고민을 넣지 않고 손닿는 대로 정직하게 만든 가구들은 그의 집안에 들어와서도 그저 묵묵하게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다. 평범한 책상과 식탁은 말할 것도 없고 사방탁자는 평창석과 도자기를 모시고 있다. 거실의 흑단 테이블은 문봉선 화백의 검은 그림 밑에서 조용히 신문이나 잡지 같은 일상의 것들을 받치고, 안방 입구의 작은 통나무 좌탁은 달항아리나 업고 있을 뿐이다. 네모난 가구들은 네모난 아파트에서 굵직한 선을 그리며 저마다 꼭 맞는 자리에 들어가 있다. 어떤 특정 공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없다. 그저 하나 둘 만들었고, 집 안에 맞는 자리가 있으면 채워 넣은 것들이다. 주로 무게감 있는 수종의 가구들이 많지만 확실히 네모는 집 안에서 튀지도 않고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 


소나무부터 로즈우드까지

 


 

목수는 나무를 만짐과 거의 동시에 가장 좋다는 나무 중 하나인 로즈우드를 취급했다. 좋다고들 하니 파푸아뉴기니에서 제재소까지 해가며 나무를 공수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렇게 시작한 로즈우드의 생나무를 만질 때면 장미향에 취할 정도로 그 향이 강하다. 그 향기 때문에라도 다른 나무를 쓴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어디 향뿐이랴. 이십 년이 가까이 된 로즈우드 다이닝 테이블은 붉은 빛깔이 그대로다. 꾸준히 쓸 만큼 싫증도 없다. 네모 단순한 디자인이 싫증을 줄여준 덕도 있겠지만 나무의 빛깔이 더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마음을 동하게 하는 핏기, 어떤 나무보다 보편에 가까운 우리의 미감을 자극하는 것이 있는 나무다. 

 


이 집에 웬일로 있을까 하는 동그란 작품이 있는데 이 역시 수종은 로즈우드로, 혹자리로 만든 화병이다. 역시 각별한 장미목 사랑이다. 아마 다른 나무였다면 아무리 화려한 혹도 목수의 흥미를 끌지 못했을지 모른다. 눈치 챘겠지만 이 집의 도자기도 마찬가지고 동그란 것은 이무규 목수의 작품이 아니다. 혹자리를 깎아내는 어려운 작업은 몇 대를 내려오면서 작업을 해온 베트남 작업자에게 의뢰했고 두 달 뒤 되돌려 받아 지금껏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로즈우드, 흑단, 티크 등 깊고 진한 색이 넘실거리는 그의 집 안방과 베란다에는 밝은 색을 내고 있는 오래 된 소나무 가구도 있다. 상판이고 측면이고 모두 두꺼운 우드슬랩으로 뚝딱 만든 것이다. 먹감나무와 편백나무로 만든 사이드보드도 있다. “남들은 소나무 뭣 허러 갖다 놓냐고 치워버리라고 하는데 나는 그냥 뭐 만들 줄도 모를 때 맨 처음에 한 거라 놔서 버릴 수가 없어.” 첫 작품에 대한 의리기도 하지만 소나무 가구의 담담한 호인의 면모는 나름 주인 자신을 닮아 작품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 집에 방문한 이도 이런 초기작품들을 통해 그가 초지일관 정직하게 가구와 함께 해온 삶을 볼 수 있어 좋다.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사천왕 같은 위엄을 갖는 그의 가구들 사이사이에는 작은 소품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목수로, 혹은 가구 작가로 살면서 나무를 몇 십억 원 어치를 사온 그지만, 그는 그 나무를 가지고 큰 이문을 남기려고 한 적이 없다. 나중에 보니 나무도 돈도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농담 삼아 말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남들에게 퍼주기 좋아해서인 것 같다. 그는 오는 사람마다 붙잡고 ‘가져가’ 한다. 주로 가져가게 하는 것은 그의 베란다에 자리 잡은 소품가게에 쌓아둔 컵 받침과 접시, 트레이들 그리고 숟가락과 포크들이다. 흑단, 자단, 나무도 좋다. 현관 앞은 작품 가게다. 낮고 긴 좌탁 위에는 네모난 나무토막에 끌로 소, 염소, 호랑이, 꽃 등을 부조를 새기고 칠을 입힌 작품들이 죽 늘어서서 주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사람 좋은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부산 오면 꼭 놀러오라고 하는데 정말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몇몇 가까운 지인은 오기 전부터 필요한 걸 미리 생각하고 와서 잔뜩 짊어지고 간다며 너털웃음이다. 실제로 그의 작은 작품들은 그 수가 작년에 비해 아주 많이 줄었다. 부엌에 잔뜩 쌓여 있던 숟가락과 포크도 마찬가지로 많이 줄었다. 목수는 이렇게라도 좋은 나무를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모양이다. 또 만들면 된다고 하면서. 

 


이무규의 가구들, 자신을 꾸미지 않은 네모는 어디에나(특히 아파트라면) 사이사이 공간에 딱 들어맞는다. 모난 돌은 정 맞는다 하는데, 모난 가구는 벽에도 딱 맞고, 가구 옆에도 딱 맞아 정이 많다. 과연 호인의 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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