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디자이너의 나무 숟가락

Craft / 육상수 기자 / 2018-03-14 23: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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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데볼은 패션 디자이너이자 목공예가다. 화려함이 돋보이는 패션 디자인을 주로 했던 그가, 이제는 투박함이 멋스러운 나무 숟가락과 그릇을 만든다.

 

알렉스는 나이키, 반스, 컨버스 등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브랜드와 협업해 패션디자이너로서 자리를 잡아갈 때쯤, 돌연 10년의 패션디자이너 인생을 접고 공예가가 되었다. 그는 왜 패션산업을 등지고, 나무로 걸음을 옮기게 됐을까.


패셔니스타, 나무를 들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유행하는 옷을 가장 먼저 입어 왔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패셔니스타로 유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옷을 좋아했으니 패션디자이너가 된 것도 자연스러웠다. 그는 패션 산업에서 크고 작은 경험들을 쌓아가면서 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도 하고 소위 ‘잘 나가는’ 디자이너가 되기 일보 직전, 갑자기 목공예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패션 산업이 패스트 패션을 지향하면서 큰 고민 없이 옷이 생산되고, 빨리 사라지는 반복에 지쳤기 때문이었다. 유행을 쫓아다니며 무엇이든 빨리빨리 해야 하는 상업적 시스템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이 주는 것들을 누리며 느리게 살 방법을 고안하다가 공예가가 되기로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만 쳐다보는 삶의 궤도와 정반대로 자연이 주는 재료들을 손으로 만져가며 물건을 만들면 인생이 또 다른 빛을 보지 않을까 희망을 품게 됐다. 예전에는 보들하고 예뻤던 손이 굳은살이 잔뜩 박인 못난 손이 되어버렸지만, 그는 자신의 손을 볼 때마다 행복하다.


나무 스승, 할아버지

 

 

알렉스는 좋은 공예가가 되기 위해서 한 가지의 재료에만 묶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무, 금, 돌 등 다양한 자연 재료를 다룬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추상적 상상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재료로 나무를 꼽는다. 알렉스가 패션디자이너였을 때는 주로 직물로 작업했는데 한 번 완성하면 결과물이 고정되는 것을 재미없다고 느꼈다. 그에 반해 나무는 습도나 온도에 예민해 알렉스가 예상하지 못했던 형상으로 변하는 것이 작품의 유연성을 추구했던 그의 가치관과도 맞아떨어졌다.


거기다가 목수였던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기억은 나무를 친근하게 느끼게 했으므로 그가 나무를 찾게 된 주요 이유가 됐을 것이다. 그는 6살 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나무의 생김새나 수종을 익혔고, 공예가로 전향하고 나서도 할아버지는 알렉스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이 되어주었다. 할아버지는 ‘어떤 나무를 고르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라지기 때문에 나무 한 토막을 고르더라도 성의를 다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알렉스는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내줄 수 있는 나무는 작업하기 쉬운 가공목 보다는 손상된 원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도 도시 개발 때문에 버려지는 폐목을 구해 다듬어 작품을 만든다. 때로는 나무 깊숙한 곳에서 못이나 금속 조각이 발견되기도 한다.

 

 

알렉스는 폐목을 세월을 견딘 좋은 나무로 여겨 자신의 작품에 그 역사가 묻어나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한다. 귀한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숟가락과 그릇이라고 해서 꼭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만히 두기만 해도 충분히 근사한 오브제가 될 것이라는 알렉스의 말을 들으면 자신의 작품에 얼마나 자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알렉스는 언제든 만들고 싶은 옷이 있으면 패션디자이너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은 도자기 굽는 법을 배워서 나무에 접목한 작업을 한다고 하니, 공예가로서의 그를 오래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알레스 데볼(Alex Devol) l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알렉스는 신사복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자연적인 재료에 매력을 느껴 공예가가 되었다. 그가 만든 나무 숟가락, 그릇, 커팅 보드 및 다양한 공예품으로 2017년 런던 디자인 위크에 참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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