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아이를 어루만질 때

송은정 기자 / 기사승인 : 2024-04-18 10:5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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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시각, 후각처럼 병원을 감지하는 제3의 감각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든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병원에 가는 것을 용케 알아채고는 현관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던 7살 조카를 한의원까지 데려오느라 온몸에 진이 빠졌다. 간신히 도착한 한의원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4그루의 자작나무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물론, 산소를 내뿜고 이산화탄소를 가져가는 진짜 나무는 아니지만 어쩐지 피곤했던 마음이 한결 노곤해진다. 나무의 기운을 느낀 건 어린 조카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병원에 가기 싫다며 심술이 단단히 든 표정을 하고 있던 얼굴이 조금은 순해져 있다. 자작나무 기둥을 세운 공간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또래친구들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는 뒷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한시름 놓았다.

한의원에 자작나무숲이 있다면  



조카의 얼굴이 순해진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비록 모형일지언정 숲을 이루고 있던 자작나무가 아이의 마음을 느슨하게 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의료시설이 필연적으로 발산할 수밖에 없는 ‘불안’과 ‘긴장’의 흐름은 ‘숲’이라는 자연적 요소와 만나 한결 무뎌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평화로운 분위기를 내포한 자연의 이미지는 많은 의료시설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렇기에 공간의 한편을 ‘자작나무숲’으로 인테리어 한 경기도 수지역 근처의 ‘자연아이 한방소아과 한의원(이하 자연아이)’의 선택은 수긍할 만하다. 개개인의 타고난 기운과 성질을 고려하고,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약을 짓는 한의학의 기본원리가 먼저 이를 뒷받침한다. 숲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 또한 친숙한 조합이다.  

 


이렇듯 숲은 자연아이만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핵심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어린이시설이 가지는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돕는 기능적 역할 또한 자처한다. 숲은 모두에게 공개된 열린 장소이지만 한편으로는 나무와 바위 뒤로 몸을 은신할 수 있는 폐쇄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통’과 ‘차단’의 특성은 공간에 그대로 적용되어 앞서 말한 공간의 한계를 극복시켜 준다.

“유아실과 부모의 공간을 분리할 경우 대부분의 아이들이 금세 부모에게로 뛰쳐나오는 일이 다반사에요. 반대의 경우에는 안정이 필요한 환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요. 그 타협점으로 공간 한가운데에 보호자가 머물 수 있는 대형 나무테이블을 두고, 그 옆에는 숲의 모습을 띤 놀이공간을 뒀습니다. 덕분에 아이와 부모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으면서도 공간의 안정감을 지켜낼 수 있게 됐지요.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는 놀이도구나 책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효과도 얻고요.”

그래서일까. 어린이시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각종 캐릭터 장식이 없이도 자연아이는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갔던 병원들 중에 가장 편안해서 자주 오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한 초등학생 환자의 이야기처럼.

‘가지치기’로 건강 지키기 



독특한 인테리어만으로는 소리 없는 경쟁을 치르고 있는 수많은 한의원 사이에서 차별성을 갖기 어렵다. 여기에 자연아이는 전문성과 투명성, 합리성을 더했다. 유현영 원장은 전국에서 약 85명에 불과한 한방소아과 전문의 중 한 사람이자, 2009년생 아이를 키우는 아이엄마다. 전문의로서의 다년간 경험과 엄마로서의 실전 노하우가 결합해 살아 있는 진료가 가능해졌다.

엄마의 마음은 같은 입장의 엄마만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터다. 때문에, 약이 청결하게 제조되는지, 안전하게 먹일 수 있는지 등 보호자들의 자잘한 걱정을 누그러뜨릴 만한 장치를 곳곳에 심어두었다. 가령, 한의원 내부의 탕전실과 조제실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제조과정에 대한 불안함을 애초에 차단시켰다. 또한 합리적인 수준의 가격으로 좋은 약재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한의학이 지닌 특유의 ‘가지치기’ 때문이다. “한방에서는 당장에 아프지 않더라도 병의 원인이 될 법한 체질이나 체력 등을 가지치기 하듯이 미리 치료하기를 권해요. 자주 한의원에 들러 상담을 받도록 하기 위해 가격의 문턱을 낮췄지요. 프랜차이즈 병원이 아닐 뿐 더러 고용 의사 대신 직접 진료를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한편으로 진료실과 놀이실 외의 모든 공간은 진료시간 동안 무료해지기 십상인 보호자들을 위해 기획됐다. 자연을 배경 삼은 카페로 연출한 것이다. 커피전문점의 원두와 고급 커피머신을 마련하고, 대기시간 동안 편안히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책을 구비해뒀다. 한의원의 중심을 차지한 대형 테이블은 카페 분위기를 자아낼 뿐만 아니라 부모들의 소통의 장이기도 하다. 육아에 대한 주제로 대화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인간관계의 ‘숲’이 형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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