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을 재해석한 디자인 공간
작고 좁은 공간을 확장한 설계 돋보여
최근 새로 단장한 경복궁 월대와 궐의 담장을 지나 사직단으로 향하는 길에, 아기자기한 잡상(雜像)들이 늘어선 캐노피가 인상적인 카페 eert 경복궁점이 자리해 있다. 1층 외부의 캐노피는 경복궁 근정전의 창살무늬를 합판을 레이저 컷팅으로 구현하여 장식했고, 내부 공간까지 이어지는 창살무늬 합판이 전면 쇼윈도로 한눈에 들어온다. 이는 넓지 않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확장감을 선사한다. 층별로 재치 있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곳곳에 숨은 미적 요소들을 발견하는 즐거움 역시 이곳의 매력이다.
곳곳에 서린 전통의 재해석
입구 캐노피에 근정전 지붕 마루의 잡상들을 배치한 디자인 뿐만 아니라, 좌식 테이블, 난간, 손잡이 등 곳곳에 경복궁의 동물 신상 모티프가 숨어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귀여운 동물 도상들로,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재미있고 친근하게 공간 컨셉을 즐기도록 하고자 했다고 알려져 있다.
디자인팀은 이를 위해 문화재청에서 신상, 잡상 도상들을 리서치했고, 이를 입구 캐노피 뿐만 아니라 공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계단의 난간, 좌식 테이블 등 천정 창살 무늬와 동일한 레이저 컷팅 방식으로 가공된 목재들이 그것이다. 경복궁을 둘러보고 이곳을 찾는다면, 궁궐에서 만난 이미지들이 어떻게 재해석되었는지 숨바꼭질 하듯 찾아보는 것 역시 공간을 즐길 수 있는 흥미로운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편, 3층 좌식공간, 층간 등 곳곳에 자리한 전통 목가구, 다구 등 소품들 역시 눈길을 끈다. 공간 조성을 맡은 워크먼트는 시공할 때 의도적으로 빈 공간들을 두고 그 곳에 클라이언트의 취향이 담길 때 비로소 공간 정체성이 완성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차 기반의 식음료와 함께 즐기는 ‘도심 속의 쉼’을 지향하는 eert는 한국, 일본의 고가구와 다구들을 공간 곳곳에 배치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면서도 정감 있는 공간을 완성했다.
목가구, 궁궐 등 전통 건축물 속 다양한 도상을 eert만의 감성으로 아기자기하고도 편안하게 재해석한 면모들을 이 곳에서 느껴보길 바란다.
1층 입구에서 마주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선반은 녹슨 철판으로, 내부 카운터는 표면을 충분히 샌딩한 밝은 빛의 금속재로 되어있다. 외부의 녹슨 철판은 외벽의 벽돌과 어우러져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편 내부의 밝고 따뜻한 인상을 주는 자작나무 합판과 대조적으로 차가운 소재인 점에서 신선한 조화를 이룬다.
자작나무 합판은 eert의 다른 공간에서도 시그니처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데, 경복궁점에서는 매장의 입지 특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도 브랜드 특유의 밝음과 따뜻함을 전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1층의 샌딩한 금속제 카운터와 자작나무 합판으로 된 천정의 창살무늬의 만남은 정갈하고도 세련된 인상이다.
이렇듯 상반된 물성인 금속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는 1층 외벽과 매대 공간은 균형감과 더불어, 전통을 동시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계승하고자 한 세련된 미감으로 풀어내고자 한 디자인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건축은 디자인 과정에서 입지,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eert 경복궁점은, ‘경복궁’이라는 랜드마크를 자작나무를 중심으로 한 자신만의 색깔로 재해석한 성공적인 사례다. 그리고 eert가 경복궁점에서 보여준 아름다움은 우리가 eert의 다음 공간 역시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설계: 워크먼트
·시공: 코아즈산업
·사진: Standing Point
·글: 이나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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