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삼청공원 숲속도서관

송은정 기자 / 기사승인 : 2024-06-14 13: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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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삼청공원의 허름한 매점이 아담한 숲속도서관으로 재단장 했다. ‘절대 엄숙’, ‘음식물 반입 금지’ 문구가 자동 반사처럼 따라 붙는 도서관을 상상하지 마시라.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복합공간이다.

 

한때 유행처럼 북카페가 거리로 번졌다. 커피를 마시며 ‘문화를 즐기기’에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던 이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의 콘셉트는 매력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책을 인테리어 소품처럼 채워놓는 무늬만 북카페인 곳들도 수두룩한 것도 사실이다.

14명의 엄마가 만들어나가는 도서관


지난해 가을 삼청공원 입구에 카페가 있는 작은 도서관이 들어섰다. 이름은 ‘숲속도서관’이다. 겨울이 아직 채 떠나지 않은 3월 중순의 숲속도서관 주변은 조금 삭막했다. 하지만 실내로 들어가니 훈훈한 기운이 넘친다. 자작나무 합판이 양껏 사용된 공간이 주는 아늑함 때문만은 아니다. 도서관 특유의 지독한 적막 대신 아이들이 쿵쿵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 동화를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 공간을 운영하는 이들의 살가운 인사가 나무지붕 아래 도서관을 채우고 있어서다.

 

 


도서관의 한가운데 자리한 카운터에는 사서로 보이는 이들이 두런두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알고 보니 이곳을 운영하는 북촌인심협동조합 소속 지역주민들이다. 도서관이 생긴다는 소식에 자발적으로 모인 14명의 어머니가 자발적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이들의 연령층과 직업은 다양하다.


음악을 가르치는 박건이 씨는 이곳 삼청동에서만 25년을 살았다. 떡볶이며 막걸리를 팔던 기억 속의 낡은 매점이 도서관으로 바뀐 것이 아직도 신기하기만 하다. 도서관을 소개하는 달뜬 목소리에서 진심어린 애정이 느껴졌다. 휴대폰으로 찍은 한 사진을 보여줄 때 특히 그러했다. 고등학생 형의 무릎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문득 숲속도서관의 진짜 주인은 책이 아니라 이곳을 지키고, 또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뜰리에 리옹 서울의 이소진 소장이 참여한 숲속도서관은 종로구에서 진행하는 작은도서관 프로젝트 중 13번째 공간이다. 새로 짓는 대신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모습으로 리노베이션했다. 기존의 나무들을 그대로 두기 위해 각별히 신경 썼고, 경사진 대지 역시 메꾸지 않고 그대로 활용했다. 그 덕에 강연이나 놀이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반 지하 공간이 탄생했다.


도서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창틀방이다. 움푹 파인 넓은 창틀에서는 마음껏 누워 뒹굴 거려도 누구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따뜻한 바닥 난방 덕분에 엉덩이를 쉬이 떼기가 어려울 정도다. 날이 풀리면 도서관 밖의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책을 읽어도 좋을 테다. 그것이야말로 숲속도서관만의 백만 불짜리 메리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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