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재>...세 남자의 집짓기

육상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5-01-08 18: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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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주택의 새로운 집 짓기가 시작되었다. 관련자들의 참여와 토론과 행함이 함께 이뤄진 공법이다. 자칫 대립과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한 과정을 자 극복하고 준공 후 다시 모여 즐거운 대화로 행복한 세 남자를 홍천군 내촌면 백운산 중턱에서 만났다.

세 남자가 모였다. 건축가, 시공사 대표, 건축주다. 집을 지으려면 당연한 일인 텐데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의 목조주택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한 해 일만 채나 짓기에 이르렀다. 

 


현재 대한민국의 목조건축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성급한 판단일지는 모르나 기술은 충분한데 그 기술을 공유한고 있는 시공사나 건축가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렇다 보니 여전히 표준화된 기술이 아닌 시공사나 목수의 경험에 의존하는 목조주택 짓기는 오늘도 현장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다행인 것은 목조주택 시장에도 소위 잘나가는 건축가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기존에 보아 온 천편일률적인 캐나다 풍 디자인이 아니라 철근콘크리트에서 구가 되는 과감한 디자인이 목조건축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목조주택의 기본 기능을 상실케 하는 경우도 보아왔다.

모든 집은 건축주가 짓는다. 



당연히 모든 집은 건축주가 짓는 것이다. 호기심 혹은 걱정 많은 건축주라면 당연히 매일 현장에 나와 집 짓는 과정을 지켜보거나 묻거나 간섭한다. 하지만 좀 내용이 다를 거란 예상을 했지 솔직히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집은 설계와 시공이라는 매우 숙련된 기술과 안목이 필요한 전문가의 영역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임을 다시금 확신한 강원도 인제군의 내린천을 거슬러 올라간 곳은 다름 아닌 홍천군 내촌면 백운산 동쪽 자락이었다. 잠든 어머니의 완만한 가슴과 같은 대지 위에 흰 스타코로 마감한 목조주택이 홀로 서 있었다. 당일 바로 명명된 ‘주현재’다. 안주인의 이름을 집에 입혔다. 

 


대개는 먼저 집을 둘러보고 공간의 흐름이나 구조를 읽어 내려가는 것이 집 구경 코스인데, 그날은 역순으로 시작했다. 거실에 송재승 건축가, 이정우 건축주, 시공 책임자 최현기 소장이 둘러앉았다. 첫 질문은 ‘건축주가 이 집을 짓는데 무슨 역할을 담당한 것이었죠?’였다.

그런데 예상한 대답을 넘어 이 집을 준비하는 긴 과정부터 설명했다. 내용인즉은 이랬다. 이정우 건축주는 캐나다에 살았다. 그 시절 목조주택은 집의 기본이었고 여러 가지 요소 중 내구성 문제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의 목조주택은 여러 문제점들이 노출되었고 이보다 먼저 자신의 집을 온전히 짓기 위해 먼저 철저히 공부를 준비했다고 한다. 

 


단순히 인터넷 정보를 뒤적이는 수준이 아니라 강의를 찾아 들으면서 전문가들과 충분히 대화를 시도했다. 주택 자제 공급업체인 (주)엔에스홈이 주관하는 실무 프로그램에 참여해 목조건축의 전반을 이해했다. 이 과정에 강사로 만난 사람이 바로 송재승 건축가와 최현기 소장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축가와 시공자를 만났으니 이미 절반의 성공을 한 것이다. 하지만 건축은 수업으로 완성될 수는 없는 것이니만큼 지난해 10월 공사가 진행되면 아예 현장에서 최소장과 숙식을 같이했다고 한다. 속으로 소장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다. 최고의 감리자인 건축주와 매일 함께 일한다는 것, 그건 상상 이상의 노고가 따른다. 그러나 이 점이 문제보다는 완성의 결과로 향할 수 있는 것은 최현기 소장의 기술력과 경험 덕분이었으리라 판단했다. 건축주보다 더 완벽한 집을 짓는 시공자에게 시시비비는 있을 수 없다. 

 

 


목조주택의 핵심인 구조의 내구성, 단열, 환기는 원칙에 입각해 지어졌다. 내장 인테리어는 물론 전문가 영역인 전기공사까지 건축주가 감당했다고 한다. 혹시 전기과 출신이거나 관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건축주는 책 보고 공부해서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집 짓는 내내 막노동을 했다. 이 정도면 건축의 일상적 형태는 아니다. 보통의 경우 건축주와 시공사의 관계는 두 토막 나거나 엿가락처럼 꼬이는 게 다반사다. 그런데 이들 모두는 지금 같은 자리에 앉아 집을 얘기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이런 예는 흔하다. 건축가가 애써 건축주에게 숙제처럼 현장에서 땀 흘리게 한다. 집에 사는 사람은 건축주다. 어느 건축가의 이상형도 아니고 허접한 시공자의 현물 냄새나는 공간은 더욱 아니다. 사실 집을 지으면서 건축주가 참여하는 이유 중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자재비 아끼는 것도 관리 감독하는 것도 아닌, 현장에 서서 자신의 살아갈 꿈을, 공간을 계획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방에는 어떤 기억을 남기고, 복도 저곳에는 누군가의 땀이 밴 수제품을 놓아 그의 기억을 채색할 것인가, 저곳은 내내 비워두고 상상의 물건들을 끊임없이 넣었다 빼는 여백의 즐거움을 누릴 것인가 하는, 뭐 그런 거.

 


주현재의 건축주는 건축 디자인에 대한 명쾌한 판단을 내린 후 송재승 건축가와 상담을 통해 일사천리로 결정했다. 건축가는 특히 부인의 결정을 흔쾌히 수용하고 실무에만 충실했다고 했다. 집을 지으면서 도면의 수정이 거의 없었다. 현장에 건축주가 서 있었음에도 이렇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생각의 결정이 완전에 가까웠음을 반증한다. 많은 경우에는 건축주가, 아님 시공사가, 또 아님 건축가가 끊임없이 바꾼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집이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매우 단순하고 작은 공간에 서로 다른 사람의 꿈과 이상이 혼재한 결과다.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공간

주방과 거실은 동쪽 바다에서 쏟아 오른 태양의 탁 트인 기운을 온전히 담는다. 넓은 거실 창을 통해 펼쳐지는 저 멀리 겹겹이 쌓인 산들의 주인은 주현재의 거실에 자리한 사람의 소유다. ㄷ자로 공간의 구조는 창과 풍경으로 이어진다. 침실은 동쪽과 남쪽의 기운을 이어가고, 입구의 게스트 룸은 석양을 등지고 온 어느 나그네의 공간이다. 이층의 넓은 다락방은 여전히 주인을 못 만난 듯하다. 무말랭이가 작은 창의 해를 따라 졸고 있을 뿐이다.

이 정도가 이 집의 공간 전부다. 방 2, 거실 1, 다락. 단순하다 못해 심심할 것 같지만 이 집의 거실은 생각을, 호흡을, 감정까지 묶는다. 과잉 감성일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인터뷰는 길어야 2~3시간이면 족하다. 하지만 주현재에서 나는 7시간을 머물렀다. 주인의 눈치를 안 본건 아니지만 오늘 하루는 염치도 불구했다. 쉬었다가 또 질문하고 그러다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또 물었다. 대화는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까닭을 묻기 전에 집은 이런 거 아닌가 생각했고, 바깥보다 안이 더 좋은 집을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좋았다. 

 


공간이 단순하다 보니 쓸 얘기보다는 느낌으로 치달았다.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듯이 집도 혼자 머물지 않는다. 땅과 길과 비와 바람과 천둥이 뒤섞인다. 그 가운데 작은 점으로 사람이 있다. 호젓한 숲길을 걸으면 나무와 잎과 물과 돌을 만나듯 내촌의 아름다운 길 위에서 이 집을 만났다. 세 남자를 만났다. 어려운 선택을 통해 성실하고 겸손하게 차근차근 쌓아 올린 집짓기 과정만으로도 작은 집 ‘주현재’는 행복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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