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헐링엄 클럽 야외 수영장... 헐링엄 클럽의 노지탤지어는 파랗다

루스 슬라비드 리포터 / 기사승인 : 2023-09-19 19: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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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이 즐기는 여가 활동 중 유독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야외 수영장이다. 적절한 온도로 데워진 물과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장, 가지런히 놓인 헤어드라이어는 이제 기본이 되었을 정도로 그 옛날 빈약했던 시설은 잊은 지 오래. 하지만 월등히 향상된 편의시설 곳곳에는 눈가를 촉촉하게 만드는 옛 모습이 남아있기도 하다. 매력적인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고 싶은 욕망, 적어도 간직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묻어나 있는 것이다. 헐링엄 클럽(Hurlingham Club)이 바로 그런 곳이다.

녹음이 우거진 런던 사우스웨스트 상류층 지역에 위치한 헐링엄 클럽. 서비스는 꽤 좋았지만 다 허물어져가는 탈의실과 목조 프레임, ‘헐링엄 클럽 블루’라고 불리는 특유의 색으로 칠한 외벽이 80년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더 이상 용도에 맞지 않는데다 수영장 개조와 새 화단 설치가 절실했다. 탈의실도 좁은데다 채광이 되지 않아 단점투성이 공간일 뿐이었다.
‘데이비드 몰리 아키텍트(David Morley Architects)’에게 헐링엄 클럽 개축은 도전적인 과제였다. 널찍한 공간에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춘 탈의실이 가장 필요했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간직해야 한다는 임무 아래 말이다.

키워드, 팀버 카세트와 물방울




임무는 훌륭하게 수행되었다. 파란색 외벽과 80년 전과 똑같은 패턴의 하얀 문,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계와 화단은 향수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기존 직사각형의 터 외에 남는 공간을 모두 포함하여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물방울 모양의 본래 터를 온전하게 사용하기로 했다. 그에 따라 건물 또한 완만한 곡선의 물방울 모양을 하고 있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지붕을 살짝 띄우면서 생긴 공간에 클리어스토리 창(clerestory glazing, 채광을 위해 지붕 밑에 한 층 높게 낸 창)을 냈다. 지붕은 별도의 기둥이 필요 없는 프리패브 팀버 카세트(timber cassettes) 구조로 되어있다. 이러한 솔루션은 참으로 쌈박하지만 무척이나 복잡한 기술이기도 하다. 이 모두 끊임없이 진화하는 삼차원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비대칭 기하학 구조 덕택이다.


다행스럽게도 데이비드 몰리 아키텍트는 이전에 비슷한 프로젝트를 맡았던 ‘프라이스 앤 마이어스(Price & Myers)’와 공동으로 작업했다. 이곳 엔지니어는 가장 현대적인 삼차원 모델링 기술을 사용해 너비 2.25m의 OSB(oriented strand board)합판을 제작했다. 데이비드 몰리 아키텍트의 마크 데이비스(Mark Davies)는 “건물 정면을 따라 연속적인 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팀버 카세트가 비틀어진 기하학 구조를 취해야 했다. 일반적인 구조였다면 훨씬 더 복잡했을 것이다. 프라이스 앤 마이어스와 함께 일하면서 실제 현장에서 조립되기 전 완성된 모습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며 공동작업의 소회를 밝혔다.

벤치의 얼굴을 한 다용도 컨테이너



스틸 구조가 탈의실 벽을 받치고 있지만 스프러스 기둥도 곳곳에 서있다. 내부 마감은 단순함과 럭셔리의 조화가 돋보인다. 벽은 판재를 가로로 붙여 마감한 뒤 외벽 헐링엄 클럽 블루와 상반되는 크림색 페인트로 마무리했다. 이곳 탈의실에는 개인 사물함이 없다는 것이 큰 특징. 모두 의도적인 설계이다. 대신 벽을 따라 설치한 오크 벤치 아래에 서랍을 두어 개인 용품을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 가운데 위치한 별도의 오크 벤치는 모서리 없이 둥글게 처리하여 불의의 사고를 예방했다. 사실 이 벤치도 서랍의 기능이 더 크다.

 

건축주는 최고 수준의 마감을 원했고, 이에 따라 데이비스는 수많은 목재 중에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용하길 원하는 오크를 골랐다. 수영복에 묻어있을 지도 모르는 염소 성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칠을 했고, 서랍 가장 윗부분에 퍼스펙스(perspex, 강력한 투명 아크릴 수지) 트레이를 설치해 벤치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을 받칠 수 있도록 했다.


디자인이 아름다우면서 튼튼한 벤치는 야외에도 설치되어 있다. 실내에 있는 벤치보다 더 많은 용도를 지니고 있다. 여러 장비를 수납할 수 있는 컨테이너는 물론 메인 풀장과 어린이용 풀장을 구분하는 난공불락의 장벽 역할까지 한다. 어린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메인 풀장에 빠지는 사고를 예방하는 안전장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린이 풀장도 탈의실과 마찬가지로 물방울 모양을 하고 있다. 


헐링엄 클럽의 유전자 코드를 해석하다


헐링엄 클럽의 옛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던 데는 데이비드 몰리 아키텍트가 이 건물의 엔지니어링 퍼포먼스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클럽 멤버들이 옛 헐링엄 클럽의 어떤 모습을 좋아하는지 파악하려 애썼다”고 말한 데이비스의 말에서 알 수 있다. 

 

화이트와 블루 컬러, 비율, 외장 마감이 만들어낸 가로 라인, 그리고 회색 지붕…. 헐링엄 클럽과 오래 한 클러버(clubber)들이 사랑하는 것들이다. 데이비스는 이를 클러버들의 DNA라고 지칭했다. 한 건축물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유전자 코드’를 보존하면서도 현대 건축물로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 건축이 헐링엄 클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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