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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치기현에 위치한 ‘히로시게 미술관’은 나무, 돌, 종이 등 모든 재료를 이 지역에서 나는 것으로 설계했다. 특히 값싸고 무른 성질을 지닌 삼나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역과의 조화로움을 실현했다. / 사진 Mitsumasa Fujitsuka. |
21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 쿠마 켄고는 건축을 통해 시대정신을 발현하고 있다. 자연과의 대립이라는 20세기 건축을 지배했던 서양식 자연관과는 대척적으로 약하고 자연스러운 건축을 제시하고 있는 그. 하지만 사실 이러한 그의 건축은 어떤 건축물보다 강하다. 건축이 뿌리내리는 장소를 단순히 자연경관이 아닌 재료로 생각하며, 그 장소에 가장 적합한 건축을 생산해 내고 있다.
장소와 행복한 관계에 있는 건축
“콘크리트는 장소를 선택하지 않는 보편성뿐만 아니라 어떤 조형도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보편성, 즉 자유를 가지고 있다. 장소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장소를 콘크리트라고 하는 하나의 기술과 그 기술 뒤에 잠재하는 단일한 철학에 의해 동일화해 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장소는 자연을 의미한다. 다양한 장소, 다양한 자연이 콘크리트라는 단일 기술의 힘으로 파괴되어 버리는 것이다.”
한번 굳으면 되돌릴 수 없는 재료, 콘크리트.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 소재 콘크리트에 대한 쿠마 켄고의 이해는 그의 건축철학을 넘어 자연에 대한 태도까지 명료히 읽히는 대목이다. <약한 건축>, <자연스러운 건축>이라는 그가 쓴 책 제목은 관용구처럼 늘 그를 따라붙으며 수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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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오카 다자이후 텐만궁 사원 근처에 위치한 ‘스타벅스’ 매장은 1.3~4m 혹은 6cm 크기의 2000여 개 우드 스틱을 전통 짜맞춤 기법으로 연결, 도시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스러움을 표현했다. |
그가 말하는 자연스러운 건축이란, 자연소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콘크리트 위에 자연소재를 덕지덕지 붙인 건축물은 더욱 아니다. 그것이 지어지는 장소와 어떠한 관계성을 맺고 있느냐에 관한 물음인데, 답은 ‘행복한 관계’에서 멈춰진다. 그런 것을 보며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장소에 뿌리내린 건축이 단순한 표상이 아닌 자연과 하나 되는 건축을 제시하고 있다.
“장소를 재료로 하고, 그 장소에 적합한 건축을 생산하는 것이다. 장소는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다. 각양각색의 소재이며, 이 소재를 중심으로 생활이 일어난다. 생산이라는 행위를 통해 소재와 생활과 표상이 하나로 꿰어지는 것, 그 결과로 자연스러운 건축이 나타난다. 약한, 자연스러운 건축은 새로운 힘을 획득하기 위한 전략이다. 결국 약함은 균형과 관련된 문제인데, 균형 잡힌 약함보다 강한 것은 없다. 약한 것들은 변화에 잘 적응하고 바로 그 약함 때문에 살아남는다.”
균형 잡힌 약함보다 강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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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오카 디자이후 텐만궁 사원 근처에 위치한 ‘스타벅스’ 매장은 1.3~4m 혹은 6cm 크기의 2000여 개 우드 스틱을 전통 짜맞춤 기법으로 연결, 도시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스러움을 표현했다 |
산업화 이후 인류는 몇 차례 걸친 커다란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자연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강한 건축을 짓기 시작했다. 1755년 발생된 리스본 지진은 근대건축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고, 1871년 미국 시카고 화재 발생으로 인해 목재 사용이 제한된 반면 콘크리트 이용은 활발해져 초고층 건축물의 발달을 앞당겼다. 1923년 관동 대지진 이후로 이후 일본에서도 목조건축물 신축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2011년 이시노마키 지진이 발생하면서 쿠마 겐코 사무실도 자연에 대응 가능한 강한 건축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지금까지 건축은 더 강하게 지어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발전했지만, 이 강함이 자연 앞에서는 강한 존재가 아니었다. 콘크리트로 강하게 짓더라도 자연은 그것을 초월하는 강함이 있었다. 이시노마키 지진 발생지역의 건축물 중에서도 지형적 특성을 따르는 건축물은 온전했다. 장소와의 관계를 고려하며 나무 등 자연스러운 소재로 자연에 대처할 수 있는 설계 방법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사유는 근래의 일련의 작업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히로시게 미술관’은 삼나무가 많은 도치기현에 위치해 있다. 미술관 뒤에는 사도야 마라는 산이 위치해 있었고 쿠마 켄고는 산의 중요성을 담고자 했다. 나무, 돌, 종이 등 모든 재료를 이 지역에서 나는 것으로 설계했는데, 특히 값싸고 무른 성질을 지닌 삼나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역과의 조화로움을 실현했다.
‘정원 테라스 미야자키’는 미야자키 역 근처 버려진 공장부지에 지어진 호텔이다. 대나무와 물이 배경이 되고 있는 예배당은 전면 유리를 써서 외부환경이 내부로 그대로 유입되도록 했다. 또 호텔 외곽을 정원이 감싸고 있어서 호텔 객실은 물론 연회장, 레스토랑 등 어디에서든 자연이 감상되는 구조로 설계했다.
사람들의 생활도 건축도 자연관과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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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자키역 근처 버려진 공장부지에 지어진 호텔 ‘정원 테라스 미야자키’는 외곽을 정원이 감싸고 있어서 호텔 객실은 물론 연회장, 레스토랑 등 어디에서든 자연이 감상되는 구조로 설계했다. / 사진 Fujinari Miyazaki. |
‘아사쿠사 문화 여행정보 센터’는 각종 회의실, 다목적 스페이스 및 전시공간, 최상층에 위치한 전망 좋은 테라스 카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지가 넓지 않은 아사쿠사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주변과 조화되는 지붕을 생각했고, 공간을 차곡차곡 적층 시키는 기법을 썼다. 천장의 비스듬한 라인을 층과 층으로 부드럽게 연결시키고 구조재로 철골과 삼나무 집성재를 써서 목구조처럼 표현했다.
후쿠오카 다자이후 텐만 궁 사원 근처에 위치한 ‘스타벅스’ 매장은 ‘자연소재를 이용한 전통과 현대의 융합’이라는 콘셉트로 스타벅스의 새로운 매장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 1.3~4m 혹은 6cm 크기의 2000여 개 우드 스틱을 전통 짜 맞춤 기법으로 연결, 도시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스러움을 표현했다.
2013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낭창낭창’은 담양의 대나무를 활용했다. 낭창낭창 휘어지는 대나무의 자연스러운 휨을 이용해서 대나무 터널을 완성했는데, 담양의 관광지 죽녹원의 아름다운 길을 표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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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의 대나무를 활용한 공간 ‘낭창낭창’ |
“자연관이라는 것은 사람과 자연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사람의 생활도, 사람이 만드는 건축도, 자연관과 연결되어 있다.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똑같은 자연관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자연관이란 나라나 국가에 귀속되는 개념도 아니다. 이것은 가장 작은 장소에 개인이라고 하는 가장 작은 단위에 귀속된다고 생각한다. 태어난 장소, 자란 장소, 살고 있는 장소가 다양한 모습으로 그 사람의 자연관에 영향을 미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영향을 받은 개인도 각양각색이기 마련이다.”
물, 돌, 나무, 대나무, 흙, 종이 등 그 장소에서 나는 자연적인 재료를 이용하고, 시각적 구성요소를 넘어 공간의 구조로 활용하고 있다. 건축은 자연과 버무려지며 공간에서 인간은 좋은 기분을 갖는다. 우리가 21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의심 없이 그를 지목하고 있는 것은 ‘자연과의 대립’이라는 서양식의 자연관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시대 상황에서 이러한 관점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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