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가구디자이너 ‘피터 메리골드’... 기하학으로 짜 맞춘 가구의 아름다움

김수정 기자 / 기사승인 : 2022-12-05 21:26:22
  • -
  • +
  • 인쇄
영국의 젊은 디자이너 피터 메리골드는 어느 날 목가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기하학적 원리로 개발한 가구를 선보였다.
▲ 스플리트 상자 선반(Split box shelves). 불규칙해 보이지만 어떤 군집을 이루는 형태가 기하학적 조형미를 돋보이게 한다.

 

누구나 생일 케이크를 잘라보거나 자르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을 것이다. 6조각, 8조각, 사람 수에 따라 그 이상으로 나누기도 할 텐데, 몇 조각이 나왔든 커팅이 끝난 뒤 각 조각이 갖는 내각의 합을 구해보라. 얼마일까? 당연히 360°이다. 이것은 (모두가 인내심 있게 케이크 분배를 기다리고 있다면) 시각적으로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 이제 종이에 4개의 변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을 하나 그려본다. 각 귀퉁이의 각도를 재서 전부 더하면 얼마인가? 이것도 360°이다.


자, 이제 한 젊은 영국 디자이너가 등장한다. 그는 이 기하학적 원리를 이용해 수납선반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둥근 나무토막을 수직으로 4등분 하고, 각 토막을 뒤집어서 선반의 각 귀퉁이를 구성하게 한다. 그러면 내각의 합이 360°인 완벽한 네모꼴의 선반이 만들어진다. 게다가 나무토막을 어떤 컷으로 4등분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꼴의 사각형이 나온다. 그의 작품 스플리트(split) 시리즈와 틸트(tilt) 시리즈는 바로 이런 참신한 발상과 시도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전반적인 그의 작품들은 비대칭적이고 불균형한 형태이면서 어떤 리듬감이 느껴지고, 복잡한 기하학적 토대에서 오는 난해함 속에서 천연소재의 정직한 성격과 순수성을 드러낸다. 이런 대비를 통해 작가는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걸까?

 

▲ 2012년 재팬 크리에이티브가 주관한 ‘심플 비젼’이라는 전시회에서 선보인 작품 <도다이(土台)>. 히노끼공예(ヒノキ工芸)라는 일본 목가구 회사의 공장에서 아름드리 편백나무를 통으로 갈라 만들었다. 벤치의 상판은 나무막대와 골풀을 엮어 덮었는데, 돌돌 말면 안쪽에 수납 공간이 나타난다.


“아뇨, 그냥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뿐입니다. 제가 물건을 만들면 그것들이 제 정신세계의 모순을 정직하게 표현해주는 거 같아요. 전 아주 직설적이면서 굉장히 까다롭고 쓸데없이 복잡한 면도 있는 사람입니다. 목재로 표현하자면 공사현장에서 많이 쓰는 가문비나무 합판 같은 타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러 겹이 쌓여서 하나의 합성물을 만들어내니까요.”


메리골드가 나무를 주재료로 쓰는 이유도 사실 특별한 의미는 없다. “제일 싸고, 가장 기본적이고, 보기에도 꽤 좋죠.” 게다가 작업실 근처에 피자 배달보다도 빠르게 목재를 배달해 주는 터키인 할아버지의 목재소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 <로그 체스>는 단 하나의 가지에서 비롯되었는데, 체스말의 특징을 보여주도록 가지의 각  부분을 선택하였다. 예를 들어 킹과 퀸은 오만하게 콧대를 올린 모양, 나이트는 원래 말 모양이라 길쭉하고 아래로 향한 코가 있는 모양, 성탑 모양인 룩은 큰 조각, 폰은 더 작은 조각으로 구성했다.

 

▲ <스플리트 상자 의자(Split box stool)>의 상판을 떼어놓으면 다른 스플리트 시리즈와 같은 원리가 적용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를 졸업한 뒤, 스플리트 시리즈로 주목을 받고, 패션 브랜드 폴 스미스에서 의뢰받아 밀라노 매장의 디스플레이용 선반 플로나(flauna)를 만들게 된다. 스플리트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작품이 호평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의 커리어도 궤도에 올랐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요즘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냐는 질문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 메리골드의 입에서 속사포처럼 튀어나왔다.


“몽골의 의류업체를 위한 매장과 설치물, 런던의 어떤 갤러리용 작품, 농산물 판매업자의매장에 갖다 놓을 거대한 곡선형 금속 작품, 또 오래된 가게 간판을 미닫이문으로 활용해 만드는 번쩍거리는 캐비닛 시리즈도 있는데 그건 블룸버그 용이고 아, 그리고 런던의 어린이 박물관에 놓일 거대한 리셉션 데스크도 만들고 있어요. 크기가 6x4m이고, 400개의 곡선형 물푸레나무 목재를 사용하는 건데 아주 복잡해요. 사실 이제껏 한 작업 중에 가장 엄청납니다. 절대 다신 안 만들걸요. 지금 하는 작업들이 다 달라서 시간을 엄청나게 잡아먹고 있어요. 9월 첫째 주까지 전부 끝내야 해서 지금 좀 패닉 상태입니다. 아, 맞다. 그리고 무슨 조명 프로젝트도 하고 있네요.”


하루 12시간씩 주 6일 이상을 일한다는 그의 말이 비로소 이해 갔다. 심지어 최근 들어 불철주야도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는데, 바로 9개월 된 아들 때문이다. 아침나절에 아이를 돌보다가 오전 10시 즈음에 스튜디오로 출근한다. 그렇다고 업무량이 줄어든 건 아니니 자연스레 야근이 늘었다. 달갑지 않은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떠맡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의외로 그의 일은 목공 작업보다 컴퓨터 도면 작업에 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다리가 저려서 최근에는 테이블 하나를 만들어 책상 위에 올렸다고 한다. 아예 서서 일할 수 있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그걸 ‘테이블 테이블’이라고 부른다.

 

▲ 통나무 하나가 4등분 되어 선반 모서리가 되는 과정.


“요즘 예술 시장은 예술의 진정성을 잃어가고 있어요. 그에 비하면 가구 제작은 제 어릴 적 꿈에 훨씬, 아주 훨씬 가깝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예술’이고요. 커서 결국 미대에 갔었지만 돌아보기조차 끔찍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술이라는 이름을 빌어 누군가의 진짜 예술적인 영감을 무시하는 풍토였거든요. 완전 엉망진창이었죠.”


메리골드가 ‘예술가’라고 불리기 싫어하는 이유도 아마 같은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지금 그는 자신의 다른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 현재 몽골 회사 작업도 꽤 흥미롭다. 다른 문화권과 일하는 게 즐겁기 때문에 언젠가 한국도 방문해서 일해보고 싶다고. 그 소망이 이루어져 메리골드의 아름다운 작품들이 한국에서 선보일 날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AD

관련기사

노르웨이의 대자연에 안긴 것처럼... 피요르드 Fjords2022.07.11
이화주 개인전 ‘사물의 관찰 Object observation’... 금속의 구조와 표면의 심미성 탐구2022.07.26
진정성과 디테일에 주력하는 독일 가구 디자이너, 마티아스 한2022.11.10
몸을 바로 세우는 기능의자2022.11.16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