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조각가 이재효...“흔해 빠진, 재료가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봐”

아트 / 편집부 / 2021-07-26 1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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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목작가의 고뇌의 파편
작업은 부단한 지속성의 결과
작업은 맘대로 하지만 전시는 한 가지로 가는 것
평범한 재료가 완결하는 미학

염소 조각가로 알려진 한선현 작가가 평소 존경하는 선배 이재효 작가를 찾아가 그의 조각 세계를 탐구하는 대담을 기획했다. 장소는 양평군 지평면 이재효 작가의 작업실이자 전시장에서 진행했다. (대담 목조각가 한선현 / 진행 유재형 편집장, 전상희 기자 / 사진 최영민 )

 


 

 

“나무는 길들이는 게 가장 중요해”

한선현(이하 한) : 형님, 정말 전망 좋은 곳에 계시네요. 테라스에 앉으니 여기가 마치 항공관제탑 같아요. 마을에 누가 들어오는지 다 아시겠어요.

이재효(이하 이) : 걸어 다니는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지. 마을에 들어오는 버스에는 몇 명이 타고 있나 아내와 세기도 해. 여기가 예전에는 버스가 잘 들어오지도 않는 진짜 오지였어. 오죽하면 이 근처 초등학교 선생들이 오지 수당을 받겠어. 그래도 요즘에는 하루에 두세 대씩 버스가 들어와.

: 이 근처에도 작가들이 많이 있죠?

- 우리 집 위쪽에 도예과 나온 입학 동기가 살고 있고, 저 위에는 충남대 조소과 나온 친구, 저 앞에는 도자기 굽는 친구가 살지. 이 근처에 조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특히 양평 쪽에 조각가들이 많다고 하더군. 회화하는 사람들은 주로 서울 근처로 가던데 조각하는 사람들은 더 가까이는 못 가. 양평에 예술 하는 사람들이 500명이나 된다고 해. 사실 이 근방이 상수원 보호구역이라서 공장이 못 들어오니까 조용하게 들어와 살기 좋고, 서울에서 오는 길도 예쁘고 해서 모이는가 봐. 과거에는 팔당댐 위로는 아파트 한 채도 없었어. 요즘에서야 사람들이 모이는 거지.

: 파주 쪽에도 젊은 조각가들이 많은데 (분위기가) 좀 아쉬운 점들이 있어요.

: 얘기 들어보니까 젊은 조각가들이 상경하면 파주로 많이 간대. 일거리가 있으니까. 다른 작가들 작업하면서 돈 버느라 자기 작업할 시간이 없다는 거야. 이 동네에 있는 젊은 조각가들은 다 자기 작업하느라 바빠서 아르바이트하라고 해도 안한대. 그쪽하고 분위기가 많이 달라. 파주에 있는 작가들은 좀 안타까워. 자기 작업 못하고 일만 쫓아다니니까.

 


"자유롭게 조각을 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느라 자유롭지 못한 젊은 조각가들의 안타까운 실상은 비단 예술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 (둘러 앉아 차 마시고 밥도 먹은 테이블을 보며) 이 테이블은 무슨 나무로 만드셨어요?

: 이건 밤나무로 만든 거야. 밤이 별로 안 열린 나무인지 속이 단단해서 작업하기 좋았어. 밤을 수확하는 밤나무는 켜고 보면 속이 다 썩어 있더라고. 양분이 열매로 다 빨려 나가서인가 봐. 그래서 과일나무를 심으면 5,6년 정도 지나서 새로 갈아줘야 해. 이건 땔감용으로 겨울 되면 양평 근처에 벌목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서 구해온 거야. 밤나무만 골라서 몇 대의 차로 실어 나르지. 이번에는 잡목을 섞어서 구해왔어. 많을 때에는 5톤 트럭이 열 몇 차씩 갖고 와. 그러면 나무껍질 벗기는 일 도와주시는 할아버지들께서 봄에 모내기하기 전까지 일해 주셔.

: 어떻게 해서 밤나무를 쓰게 되셨어요? 표면의 검은색은 칠을 한 건가요?

: 내 작업들은 나무를 엮어야 하잖아. 그러다 보니 구부러진 나무가 많이 필요하더라고. 나무가 많이 휘어져야 했고,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밤나무였어. 색깔도 잘 맞는 것 같고. 소나무나 엄나무들도 써봤는데, 여기 산에 밤나무가 많아. 적지적소의 개념이지. 다른 나무를 구해서 다른 작업을 해보고 싶기도 한데 그러자면 수량 맞추기가 어려워. 구(원)로 표현하는 것은 잣나무로 만들어. 표면은 한 번 태운 거야. 초창기에는 나무껍질 다 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해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어. 톱질을 굉장히 조심히 해야 했고, 무엇보다 벌레가 생겨서 고생을 많이 했지. 이 때문에 작업이 굉장히 어려웠어. 벌레 다 죽이고 약품처리 해놔도 또 벌레가 들어와서 알을 까놓는 거야. 도저히 관리가 안 돼. 껍질이 있으면 무조건 벌레가 생겨. 요즘에는 아예 100도 가까운 온도에서 7~8일씩 나무를 찌지. 나무가 열을 한 번 세게 받으면, 예를 들어 물에 삶거나 찌거나 하면 뒤틀리는 게 적어져. 나무의 성질이 바뀌는 거지. 살아있는 상태에서 죽은 상태로 바꿔야 변형이 덜 일어나.

 



: 미라 상태로 만들어서 작업하는 거네요.

: 그렇지. 안 그러면 다 갈라져서 큰일이 나. 처음에는 전시장에 갖다 놓으니까 ‘텅’하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갈라지더라고. 터지니까 모양도 뒤틀리고. 초창기에 판 작품 몇 개는 대패랑 다른 공구 챙겨들고 외국까지 날아가서 A/S 해줬지. 덕분에 마일리지만 쌓이데.

: 숙성·건조에 필요한 열은 어떻게 가하세요? 기계를 설치하셨어요?

: 기계가 아니고 방을 만들어서 그 안에 큰 난로 넣어놓고 불을 때고 있어. 열을 뜨겁게 올려서 방을 달구지, 불가마같이. 주로 밤나무를 찌는데 오래 찌면 짙은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해.

 


 

 

 

"한 작가, 내 작품은 우드(WOOD)가 하는 이야기야"

: 점점 작품이 커지는 것 같아요. 아래 작업실에 있는 것도 엄청나게 커 보이던데. 지름 몇 미터짜리인가요?

: 현재 지름은 5미터고 조립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든 거라서 더 커질 수 있어. 원래 내 작품들이 다 엮은 후에 만들기 때문에 해체도 어렵고 조립도 어려워. 웬만한 실내문은 거의 통과 못하고. 그래도 규모가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 예전에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거든. 높이가 60미터나 되는 미술관에 빨간색 천으로 만든 작품을 크게 걸어 그 공간을 가득 채웠더라고. 내가 이렇게 큰 공간에 작품을 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몇 년 고민했지. 그러다 나무로 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크게 할 수 있는 것을 모색하다가 봉에 나무를 꽂아서 꼬치처럼 만든 다음 길이를 조절하면서 크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지. 이 작품이 예전에 환기미술관에서 선보였던 건데 관람객들이 일반 크기의 문을 지나 전시실에 들어오면 저렇게 큰 나무로 만든 공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더라고. 그 모습이 보고 싶었어.

: 작업은 더하기 빼기의 과정이라고 다른 인터뷰에서 말씀하셨잖아요. 빼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셨던데 규모는 점점 커지네요(웃음).

: 지름 10미터와 5미터 짜리 공의 느낌은 천지 차이야. 단순히 몇 배가 아니라 부피로 따지면 몇 십 배가 되지. 조각은 크기와 굉장히 연관이 많아. 비교를 하자면 음악을 들을 때 음량을 크게 틀어놓고 듣는 것과 조용하게 들을 때 느낌이 확연히 다르잖아. 조각도 마찬가지야. 똑같은 모양이라도 크기에 따라 전혀 다른 감흥을 가져오는 거지.
나는 내 이야기나 철학을 조각에 담으려는 게 아니라 그 재료가 가진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노력해. 그렇다보니 조그마한 각 재료의 이야기를 한 덩어리로 모을 때 더 또렷하게 전달되더라고. 많이 모일수록, 더 커질수록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지워지고 재료가 하고자 하는 얘기만 남겠지. 촛불 시위할 때 몇 명 모인 거랑 몇 만 명 모인 거랑 느낌이 확연히 다르듯이 모이면 힘이 배가 돼.

 


: 조립하는 데에도 오래 걸리시겠어요. 아무래도 재료가 나무인지라 야외 전시면 곤란하겠는 걸요.

: 처음에는 구(球) 하나 설치하는 데 3일이 걸렸는데. 이제는 하도 분리했다 조립하기를 반복하니까 하루 이틀이면 가능하더라고. 야외 전시일 때는 비를 맞아서 색이 변할 수밖에 없어. 그러면 나무만 빼서 땔감으로 쓰고, 다른 나무를 잘라서 꽂아야지 어떻게 해.

: 작업에서 빼는 과정과 규모가 커지는 것은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 그렇지. 미술대학에 처음 들어가면 뭐든 집어넣잖아. 구상이든 뭐든 간에 모든 이야기를 작품에 다 담으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빼내고 결국 하나만 남겨서 작업하게 되더라고. 또 뺀다는 것의 다른 의미는 내 이야기를 빼고 나면 순전히 이 재료가 하려는 이야기만 남게 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 어른이든 애들이든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누가 보든지 간에 내 얘기를 빼버리면 똑같은 시각에서 볼 수 있으니까. 내 작품은 재료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래서 다 빼고 재료에만 집중시키고 싶었어. 내가 못으로 만든 작품 중에 한글이랑 영어로 표현한 것도 있는데 그것도 아무 내용 없이 글자만 있어. 내용이 있으면 사람들이 재료에 집중을 못하고 거기에 정신이 쏠리지. 인위적인 이야기를 모두 빼버리고 남은 재료의 이야기를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진 미적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 궁금했어. 사실 자기 얘기를 남한테 해봤자 남들은 별로 관심 없잖아.

: 재료가 하는 이야기를 전해주신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작업을 구상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 작가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는 내가 보는 대로, 내 감각대로 나무를 처음 봤을 때 드는 생각으로 작업하는 편이야. 동그랗게 할지 평면으로 할지, 아니면 땅에 놓을 것인지 매달 것인지 등을 그냥 느끼는 대로. 이론도 없고 방법도 없이 바로 작업해.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배치하지도 않아. 그냥 끼워 넣어. 나무에 구멍 뚫고 자동차 타이어에 쓰는 큰 나사못으로 조이면서 공간에 대충 나무를 채워 넣는 식으로 말이야. 처음에는 무조건 관통을 시켰어. 관통하고 엮고 또 관통하고 엮으면서. 그러다 어느 단계가 지나면 더 이상 관통하는 방법만으로는 공간을 채울 수가 없게 돼. 그 땐 나무 토막을 중간에 찔러 넣는 게 양심에 걸렸지. 근데 하다 보니까 양심에 걸릴 일도 아니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나무 토막으로 자유롭게 공간을 채워.

 

 




“지겹지 않느냐고? 작업은 보여주는 전시와 별개여야 해”

: 떡 주무르듯이 하시는군요. 느낌 가는 대로. 그런데 하시면서 한 방향으로만 가면 회의가 들진 않으세요? 타성에 젖어가는구나 싶은.

: 사실 요즘 심각하게 하는 고민이 바로 그 부분이야. 작업 방법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을 바꾸면서 해결해야 할 것 같아. 작업을 바꾼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지. 국내 50대 이상 작가들의 경우 작품 시장이 국내에 한정되다 보니 여기에서의 평판이 작가의 모든 것을 판가름하는 시대를 겪었잖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격이 급한 편이라 자꾸 다른 걸 보여달라고 요구해서 작가들도 부응하려 애썼지. 그건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야. 국외 유명작가들 작품들 중에 우리가 기억하는 건 한 두 가지 뿐이잖아. 누구하면 뭐 이런 식으로. 김창열 화백도 한 가지만 계속 해왔기 때문에 물방울이 떠오르는 거야. 다른 걸 계속하다 보면 작가가 가진 자기만의 그 무언가가 없어져. 계속 작품을 바꾸면서 정체성이 사라지니까.
결국, 작업은 보여주는 전시와 별개여야 해. 작업장에선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작품을 해도 되지만 전시는 한 가지로 가는 거야, 아주 조금씩 바뀌게. 작가는 자기 의지에 의해 똑같은 걸 만들지는 않거든. 조금씩 그렇게 하다보면 거기서 깊이가 생기는 것 같아. 한 10년 정도 작업하고 나서 더는 할 거 없다 싶을 때, 계속 하면 거기서 깊이가 나오는 거지. 그때부터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해. 그래서 방향을 트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
나로서는 지금 작업 방향을 트는 게 문제가 아니고 내 생활 방식이 좀 답답하게 느껴져서 다른 곳으로 가볼까 생각 중이야. (한 : 제주도 어때요?) 제주 좋지. 나만의 작품은 좀 더 자유롭게 전혀 다른 길을 걷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 그림 그리는 게 그 중 하나야.

: 형님 작품 위에 이렇게 찻잔을 올려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도대체 작품과 가구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 간단하지 뭐. 내 작품 중에 위가 평평해서 무언가를 올려놓을 수 있으면 가구고 둥글면 작품이야. 사실 작가가 자기 작품에 사인을 하고 작가로서 대우받은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 미술사에서 정말 짧지. 이후로도 오래갈 것으로 보이지 않아. 안타깝지만 100년 안에 작가라는 부류는 포괄적 개념인 디자이너의 한 부분으로 불리지 않을까.
벽에 걸어놓고 접근도 못 하던 개념이 변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야. 요즘엔 들고 다니는 가방도, 입고 다니는 옷도 몇 백, 몇 천만 원 짜리 작품들이잖아.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부분으로 쉽게 미술이 다가간 건 잘한 일이지.

: 공감합니다. 예술이란 사람들 삶을 윤택하게 만들려고 시작한 건데 시각적으로 즐기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되잖아요. 예술과 삶의 경계를 두고 미술관에서 큰소리도 내지 못하게 억압했던 그런 거리감은 좁혀져야지요. 그런데 대표작으로 구를 만드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 내 얘기를 담는 게 아니고 재료가 하는 이야기를 전해야 하니까. 처음 졸업 작품 때 했던 돌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그 재료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구야. 거기에 뭐 하나 튀어나와 있으면 모든 관심이 그곳에 집중돼. 그런데 다 없애고 동그란 구만 보여주면 시선이 어느 한 쪽으로도 쏠리지 않고 오로지 나무에만 집중하게 되는 거야.

 

 

: 그렇죠, 구는 어디서 봐도 재료만 명확하게 보이는 장점이 있죠. 구를 만들기 위한 나무는 따지는 편인가요? 저도 처음에 땔감으로 쓰는 나무들 가지고 선반도 만들고 작품도 만들고 하긴 했어요.

: 비싼 재료 쓴다고 작품이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니잖아. 작가들은 처음에 다들 길바닥에 흘려 있는 거 주워다 쓰고 그러지. 그러다 돈 생기면 좋은 재료 사고, 형편이 나아졌다고 해서 쓰고 싶은 재료를 찾지 비싼 재료를 쫓지는 않아. 조각하기 좋고 작품에 어울리는 재료로 사다 쓰니까. 처음에 못 박는 작업을 했던 나무는 대학 졸업하고 몇 년 안 되었을 때 어린이 놀이터 짓는 현장에서 구한 각목이야. 그걸 거의 20년 가까이 안 버리고 갖고 다녀. 많이 상했지만 그래도 못 버리겠더라고. 그런 식으로 뭐 한다고 매번 사러 가기 귀찮으니까 주워오고 그랬지.

: 그렇죠. 첫사랑이란 게 그렇잖아요(웃음). 재료는 땔감이어도 작가들의 구상에 맞으면 정말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지죠.

: 응, 그리고 나는 가급적이면 흔한 것, 싼 것, 주워올 수 있는 것으로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야. 정말로 목재로는 전혀 못 쓰이는 땔감 용도의 나무로 만든 작품들이 많지. 철길에 있는 돌을 매달고, 주워온 낙엽 돌돌 말아서 매달면 작품이 됐을 때 하나의 부가가치가 6~7천원 돼.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이렇게 변화되었을 때 오는 쾌감이 있어. 비싼 것을 사다가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일반인들 누구나 볼 수 있는 재료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는 왜 이걸 생각 못 했나’ 하고 나중에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평범한 것들로 작업하는 게 참 즐거워.

 

 

 



이재효 작가의 작품은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 인기가 높다. 구의 형태, 기독교 전통이 남아있는 서양에서는 기념일마다 리스 장식을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매다는 전통이 있다. 이 감성이 이재효의 ‘구’를 만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일 수도 있다.

: 형님 작품은 동양뿐 아니라 서양 쪽에서도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 내가 만드는 형태가 굉장히 단순하잖아. 좌우대칭이 많고 아주 단순한 구에서 조금씩 변형된 원기둥, 원뿔 등이 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거지. 인간의 머릿속에는 아주 초보 단계의 3D 프로그램만 깔려 있어서 조금만 복잡해지면 안 돼. 특별히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면 복잡한 모양을 인식하기 어려워. 그런 면에서 내 작품에 대한 거부감은 없을 거야. 그래서 더 재료에 초점을 맞출 수 있지. 나는 야외 조형물을 많이 만든 편이 아닌데, 기억하기 좋은 모양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대단히 많은 작품을 남긴 사람이라고 여기더라구.

: 그것, 작가에겐 정말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깊이 있는 인상을 준다는 게 쉽지 않은데 형님 작품에는 ‘강렬함’ 혹은 ‘주목’하게 만드는 성질이 있어요.

: 마이너스지.(웃음) 어디에 가면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다른 건 없느냐고 물어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과 다른 걸 좋아하잖아. 사들이는 사람 처지에서는 이미 본 작품 말고 좀 색다른 걸 원하지.

: 색다른 것, 맞아요. 형님 작품에 못으로 작업하신 것들도 많잖아요.

: 못도 세계 어디를 다녀도 다 똑같은 모습이니까 누구에게나 익숙한 바로 그 형태를 가지고 얘기를 하고 싶었어. 나무로 만든 구에도 못을 사용해. 대신 못을 숨기고 나무를 드러내지. 못 작업은 나무 작업과 위치만 바뀌는 거야. 못을 박고 나무를 태운 다음, 못을 그라인더로 갈아서 못은 드러나고 나무를 숨기는 식이지. 못에는 나이테가 없을 뿐 결국 똑같은 작업 방식이야. 못도 흔한 거라 쓴 거야. 청계천 근처에서 파는 예쁜 부속품이었으면 안 썼을 거야.

: 결국, 흔한 재료에서 더욱 풍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 셈이네요. 앞으로 제 작품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왼쪽) 한선현 작가, (오른쪽) 이재효 작가

 

조각가 한선현 : 흰 염소를 좋아하는 한선현은 1968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관동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1996년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 미술 아카데미를 다니던 중 우연히 성당문을 만드는 목조장인 Claudio Chiappini를 만나 목조각에 심취하게 됐다. 회화 작업도 함께 진행하는 그는 귀국 후 8번의 개인전(조각전, 드로잉전)을 가졌다. 관동대 조소과, 상명대 출판만화과, 한겨레 현장드로잉에서 강의를 했다. 그린 책으로는 길벗어린이의 <토끼뻥튀기>와 산지북의 <외길 위의 염소>가 있다. 현재 남서울대 애니메이션과 강사, 설치그룹 ‘마감뉴스’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아홉 번째 개인전 ‘Pinocchio의 여행’을 즐겁게 구상 중이다.

조각가 이재효 : 1992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1998년 오사카 트리엔날레 조각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국내는 물론 도쿄, 베이징, 홍콩 등의 아시아와 뉴욕, 런던, 파리 등의 국외 다수의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환경조각 작품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만 15년 전 양평에 둥지를 틀었고 최근 직접 설계한 총건평 500평 규모의 작업장, 전시장, 살림집 등을 세웠다. 올해에는 성곡 미술관과 런던, 밀라노, 샌디에이고에서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다. 최근에는 지난 20년과는 또 다른 10년을 모색하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 미술을 처음 접했던 때로 돌아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고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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