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개] 『나이층: 청파동 주택 리모델링 기록』...청파동 주택 90년의 수선 기록

김수정 기자 / 기사승인 : 2025-03-05 13: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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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서양식, 한식이 절충된 서울 청파동 주택의 리모델링 시간 기록
시간에 의한 동시대의 재료와 시스템을 덧대는 건축자들의 반복적 행위
정이삭 건축가, 지연순 공간디자이너, 조재량 목수 공저

책은 여러 가지 재료가 포개진 그 단면은 일본과 서구의 혼종으로 만들어진 이 집이 한반도의 풍토에 적응하며 살아온 시간의 층위이자, 삶의 과정을 보여준다. 나무가 한 해의 생존을 완수하며 성장의 시간을 기록한 나이테를 남기듯이 이 집도 건축의 나이층을 남겼다. 

 

 

 


청파동 주택은 1930년 일본인에 의해 용산구 청파동에 지어진 지상 2층, 지하 1층의 목조주택이다. 일제 식민지기였던 당시 용산구에는 일본 가옥과 서구 주택이 접목된 화양절충식 주택이 다수 지어졌고, 청파동 주택도 전형적인 화양절충식 주택 중 하나다.

다만, 청파동 주택은 광복과 문화 및 기술의 변화 등 90여 년간 시대의 흐름을 지나오며 당대의 삶에 맞춰 조금씩 변용되어 왔고, 그 원형과 변용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는 점에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건축가 정이삭(동양대학교 교수,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이 청파동 주택을 한반도 풍토에 맞춰 변용된 화양절충식 주택을 뜻하는 ‘한반도 화양절충식 주택’이라 명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례로 책의 제목인 ‘나이층’은 1층 바닥면에서 발견된 15개의 재료층을 묘사하는 단어로, 이러한 시간의 층위에서는 아궁이, 연탄, 기름보일러 등 바닥 난방 방식의 변천을 확인할 수 있다.

건축계에서 ‘리모델링보다 신축이 쉽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유는 무엇을 남기고 없앨지에 대한 판단을 필요로 하는 부분 철거보다 전면 철거가 빠르기 때문이며, 최초의 건축이 가진 미감과 결을 맞추는 것보다 새로 짓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2017년 리모델링 의뢰를 받고 청파동 주택을 방문한 정이삭은 이 주택의 문화재적, 주택문화사적 가치를 알아보고 이에 공감하는 협업자들을 불러 모았다.

정이삭, 지연순(공사 관리 및 설계 협조, 공간모색연구소 대표), 조재량(목구조 자문, 송련재 대표)은 빠르고 편한 길보다는 잠시 멈추어 세세한 판단과 선택을 한 후, 다시 나아가는 길을 택한다. 건축 사진가 노경(로스페이스 대표)은 이러한 지난한 시간을 함께 따라가며 청파동 주택의 리모델링 전후 과정을 사진으로 충실히 기록했다.


90여 년을 거치며 변용되어 온 건축물 리모델링


청파동 주택은 원형의 보존적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재적 가치와 90여 년간 한반도의 풍토에 맞게 변화해 오며 우리 주택문화사를 기록해 온 가치를 동시에 품고 있다. 그렇기에 어떠한 기준으로 청파동 주택을 복원, 재생, 활용할지는 리모델링 작업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 집은 무엇인가. 이 집은 일본의 것인가, 한국의 것인가, 일본도 한국도 아닌 서구 문명의 편린인가.”(15쪽)라는 정이삭 건축가의 질문처럼, 청파동 주택의 리모델링 작업은 건축의 유형을 구분하는 데서부터 가치 판단을 요구한다. 여러 전문가의 자문과 조사를 거친 정이삭은 청파동 주택을 ‘한반도 화양절충식 주택’이라 명명하고, 일식과 서양식, 한식이 가져다준 특성 모두를 긍정하며 작업에 착수한다.

작업자들은 최초 건축물로의 원형 복원 혹은 리모델링 전 온전한 상태로의 보수와 같이 특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잡지 않고, “건축주의 의견, 실사용자에 맞춘 기능적 보수, 현시점 기술적인 여건”에 더해 “주택이 가진 특유의 미감”(175쪽)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다만, 작업자들은 청파동 주택의 작업 방식만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와 비효율을 경험했고, 더 나은 방법을 고민 중이다. 포럼에서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을 현대인의 삶에 맞춰 작업해 온 건축가 조정구(구가도시건축 대표)와 문화재 관련한 연구와 수업을 이어온 이경아(서울대학교 교수)를 초청한 이유도 더 나은 혹은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조정구는 전통 건축이라 판단하는 나름의 기준을 건축의 ‘고유한 정취’라고 밝혔고, 이경아는 “한국의 정체성이 세계적으로 자리매김해 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여러 기준에 의해 다양한 복원과 활용 방식들이 나타나는 사례에 열린 태도를 가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175쪽)는 의견을 전했다.

이처럼 『나이층: 청파동 주택 리모델링 기록』은 여러 문화와 시대가 충돌하고 융합된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건축을 어떻게 건축적으로 다뤄야 하는지 정답을 제시하는 책이기 보다는, “경험의 기록과 공유가 더 나은 다음을 만들 수 있다”(37쪽)는 믿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근대건축이 품은 건축의 의미


‘청파동 주택에 들어서다’는 책의 내용을 안내하는 정이삭의 글에 더해, 청파동 일대의 필지 구분을 보여주는 시대별 지도와 주택의 물리적 변화를 중심으로 일괄한 타임라인으로 꾸려져 있다. 이는 청파동 주택의 저변에 자리한 개발, 생활 양식 등의 움직임을 짐작케 한다.

‘건축을 기록하다’에서는 정이삭이 청파동 주택을 작업하며 판단의 근거로 삼았던 건축가의 태도와 결정 및 실천들을 서술하고, 리모델링 전후 도면과 사진들을 소개한다. ‘구축을 기록하다’에서는 지연순이 열 세 달에 걸친 리모델링 과정을 공종별로 구분해 세세하게 설명하고, 조재량은 내외관에 쓰인 목조와 구조를 중심으로 청파동 주택이 가진 특이점을 짚어낸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청파동 주택의 외연을 넓혀주는 이야기를 담았다. ‘삶을 기록하다’에서는 지연순이 1959년 경부터 근래까지 청파동 주택에 거주했던 신은주를 인터뷰해 주택에 얽힌 건축주의 삶과 시선을 살펴보고, ‘포럼과 전시로 남기다’에서는 청파동 주택의 가치를 모색하고 공유하기 위한 자리였던 포럼, 전시 등의 활동들을 기록했다. 곳곳에 배치된 노경의 건축 사진들은 주택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청파동 주택이 가진 미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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