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비용 총 2000파운드(약 340만 원)을 자랑하는 어쿠스틱 쉘(Acoustic Shell, 어쿠스틱 쉘은 음향반사판을 뜻하지만 통상 야외 공연장을 지칭하기도 한다-역자 주)이지만 프로젝트를 담당한 이는 놀랍게도 세라피노 디노사리오(Serafino Dinosario)였다.
그는 국제적인 자문회사 뷰로 해폴드(Buro Happold)의 음향 엔지니어로, 뷰로 해폴드의 일원이 아닌 음향 엔지니어 개인으로서 어쿠스틱 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디노사리오가 로마에 머물고 있을 때 시칠리아 오케스트라와 인연이 닿았고, 매해 여름 아치레알레(Acireale)에서 열리는 음악 워크숍을 ‘W-Sound’를 위한 공연장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당시 음악 워크샵은, 지금은 호텔로 바뀐 대저택 ‘빌라 페니시(Villa Pennisi)’ –한때 바그너의 집이기도 했던- 정원에서 진행되었다. 밤이면 더 아름답게 보이는 정원과 공연을 위한 무대 세팅은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음질이 문제였다. 음향이 반사되는 콘서트홀과 달리 음향이 고르지 않은데다 소리가 청중의 귀에 닿기도 전에 벽에 부딪혀 튕겨 나가기도 했다. 소리가 여기저기로 새어나가 청중에게 전달되는 양은 극히 적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한 앰프는 클래식 음악가들이 질색을 할 뿐 아니라 비용 문제와 산만한 분위기를 초래했다.
합판 두 장이 만든 아름다운 음악
디노사리오는 숙련된 전문가였지만 여러 난관이 있었다. 지역 재료를 사용해야 했으며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학생들이 빠른 시간 안에 완공해야 했다. 또 추후 골조를 해체해서 재사용할 수 있어야 했고,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했다. 그 모든 난관을 흔쾌히 끌어안은 그는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디노사리오는 ‘CMMKM Architects’의 대표 세르지오 폰(Sergio Pone)과 나폴리 대학교와 카타니아 대학교의 건축과 학생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음향 이론과 실제를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했다.
공연장 구조와 음향반사판 모두 지역 상인이 기증한 목재로 제작되었다. 반사판은 밀도 20kg/m2를 맞추기 위해 40mm 두께의 합판 두 장을 볼트로 이어 붙여 사용했다. 표면에 칠한 비흡수성 페인트는 밤이슬로부터 합판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미세한 구멍을 막아주어 반사 효과를 증대시킨다.
반사판의 총 무게가 1톤이나 되기 때문에 구조가 여간 튼튼해서는 안 되었다. 너비가 55mm, 두께가 20mm인 스프러스 목재를 볼트와 나사로 이어 만든 네 개의 그물망 구조는 총 150kg으로, 이 ‘가벼운’ 구조가 1톤이 넘는 반사판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세르지오 폰은 이러한 현상이 아이러니하다며 오직 구조가 지닌 용적량과 하중의 분배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결과라고 말했다.
시칠리아를 넘어 세계로
음향반사판은 요트 로프로 묶어 스프러스 구조에 매달았다. 매달린 반사판의 각도가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틀어진 각도에 따라 음향의 반사각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디노사리오는 3D 모델링을 통해 반사판의 경사 값을 구했지만 정확한 값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그 때, 음향학 수업에 가장 열심이었던 한 학생이 빛을 가지고 실증에 나섰다. 빛과 소리는 거의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빛이 어떤 방식으로 반사된다면 소리 또한 같은 방식으로 반사된다고 예상할 수 있다. 많은 음향 전문가들이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실험을 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메인 무대가 트리오 연주였기 때문에 세 명의 연주자가 위치한 곳에 빛을 놓고, 정확한 각도를 맞추기 위해 거울을 이용했다. 결과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고, 200여명의 관객 앞에서 연주된 차이코프스키의 ‘Trio in A Minor’는 선명한 소리로 어쿠스틱 쉘을 가득 메웠다.
마지막 공연 후 디노사리오가 ‘ReS(ReSonant Strings Shell)’라고 이름 붙인 어쿠스틱 쉘은 내년을 기약하며 해체되었다. 극히 적은 투자로 대단한 성과를 이룬 어쿠스틱 쉘은 시칠리아 정원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자격이 있다. 작은 규모의 야외 공연장이 인기를 얻고 있는 지금, ReS는 어쿠스틱 쉘의 가능성을 충분히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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