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조직문화의 패러다임을 깨는 회사 운영으로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제니퍼소프트. 산 좋고 공기 좋은 헤이리에 위치한 사옥은 제니퍼소프트가 추구하는 개방적 사고와 사회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무실이 집처럼 따뜻한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목조주택으로 지어야죠.” 제니퍼소프트 건축 설계를 맡은 이현욱(이현욱의좋은집연구소) 소장은 집 같은 사옥을 짓고 싶다는 이원영 대표의 말에 목조주택을 떠올렸다. 직원들에게 심리적 여유를 주기 위해 사무공간은 반드시 나무로 지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현욱 소장이 일을 맡기 전, 제니퍼소프트 일은 다른 건축가가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도면에 그려져 있던 사옥은 철골조에 모던하고 세련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현욱 소장의 책 <두 남자의 집짓기>를 읽고 감명 받은 회사 측이 이현욱 소장을 찾으면서 제니퍼소프트가 목조주택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있을 건 다 있는 3층 건물
제니퍼소프트의 건물 구조는 지하1층 수영장, 지상1층 카페, 2~3층은 사무공간으로 되어 있으며 옥상에는 텃밭이 있다. 사람들은 언론에 노출된 제니퍼소프트의 모습을 보고 사옥이 제법 큰 건물일 것이라고 상상한다.
스파, 아이들 놀이방, 수유실, 회의실 등의 다양한 부대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니퍼소프트 사옥은 81㎡의 면적에 4개의 층만으로 구성된 크지 않은 규모다. 건물 설계 전 회사 측은 직원들과의 협의를 통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공간의 리스트를 작성해 이현욱 소장에게 넘겼다. 이현욱 소장은 좁은 공간에 이를 모두 수용하기 위해 공간을 합리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했다. 안 쓰는 공간이 한 곳도 발생하지 않도록 꼼꼼히 체크했다.
건축가의 합리성이 가장 가시적으로 엿보이는 부분은 지하1층 계단부터 3층까지 이어지는 20m 높이의 책꽂이다. 건물 내 도서관을 따로 만들기보다 직원들에게 항시 노출돼 있는 계단 옆에 책꽂이를 배치해 도서관의 영역을 넓게 확장한 것.
제니퍼소프트의 개방성을 오롯이 녹여낸 카페
카페 1층은 콘크리트로 마감한 기둥이 없는 구조다. 인테리어를 맡은 김재화 (멜랑꼴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 실장은 1층 공간에 제니퍼소프트의 개방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1층 카페에는 직원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니퍼소프트의 이원영 대표와 직원들은 상당히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관을 가지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제니퍼소프트가 사회에 꼭 필요한 자극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사람들이 와서 이 공간을 경험하길 바랐어요. 그래서 1층을 보다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죠.”
김재화 실장은 공간의 출입구가 있어야 할 양 벽에 통유리로 된 폴딩도어를 과감히 설치했다. 양 면의 폴딩도어를 활짝 열면 사옥의 잔디밭과 카페, 도로가 하나로 연결된다. 문이 닫혀있을 때에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기에 카페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폴딩도어가 일단 사람들을 끌어당겼다면 찾아온 이들의 발걸음을 묶어놓는 건 아늑한 실내공간이다. 화이트 컬러의 프레임과 천장, 회색 빛 노출 콘크리트 벽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공간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짙은 브라운 컬러의 목재 테이블 두 개는 공간의 친밀감을 배가한다.
테이블은 가구업체에서 고가로 공수해 온 물건처럼 보이지만, 사실 김재화 실장이 직접 제작한 것이다. 가구의 주 소재를 나무로 생각했기에 어떤 나무로 가구를 만들까를 고민하다 티크 우드플로링을 생각해냈다. 바닥재인 우드플로링은 잘 휘지 않고 단단하기 때문에 견고한 가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
김재화 실장은 현장에서 우드플로링을 가공하여, 금속 골조 위에 부착해 의자와 테이블을 완성했다. 가구 색에 통일감을 주기 위해 카페 내 선반, 카운터 상판 등의 무늬목 제품들을 모두 짙은 브라운으로 스테인 처리 하였다. 화이트와 브라운, 두 컬러가 카페 공간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공간 톤이 정갈하게 정리되었다.
창은 작게, 업무환경은 더욱 쾌적하게
공간의 따뜻한 기운은 2,3층에 들어서면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사무공간인 2,3층은 목골조에 우드월을 세우고 그 위에 석고보드를 바른 뒤 흰 페인트칠을 하였다. 밝은 톤의 글루램 기둥과 흰 벽면은 공간을 환하고 따사롭게 한다. 벽면에 설치된 책꽂이는 향나무 집성목으로 만들어 공간에 은은한 향을 낸다.
에너지 효율 등을 생각해 작게 낸 창은 공간을 더욱 포근하고 안정감 있게 만든다. 2층에 근무하는 부서는 기획·영업·마케팅팀(이원영 사장도 2층에서 근무한다. 별도의 사장실 없이 직원들과 같은 자리에서 근무한다). 공간은 직원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활동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사무실은 크게 업무공간과 소통공간으로 나뉘며, 두 공간은 낮은 파티션으로 구분된다. 사고의 고정된 틀 없이 창의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작업인 만큼, 직원들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파티션을 낮게 제작했다. 야외에 테라스도 설치해 업무 수행 중 휴식을 취하거나, 헤이리 자연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착안할 수 있도록 했다.
비슷한 소재를 사용하였어도 3층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개발자들이 근무하는 3층 공간은 각 직원들의 개별적 공간을 보장하는 형태로 구성됐다. 천장에 닿을 듯한 높은 파티션이 각 직원들 자리의 앞 옆에 설치돼 있어 직원들이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중간에 커다란 회의 테이블이 놓여있지만 별도의 테라스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건축 설계 당시 회사 측에서는 창을 크게 내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었다. 하지만 이현욱 소장은 사무공간은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며, 바깥 경치를 보고 싶다면 2층에 내려가 테라스를 이용하거나 옥상에 올라가면 된다는 뜻을 고수했다.
“밖의 자연경관이 아름답다면 밖으로 나가 직접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부에서는 그 단편들을 보며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창을 크게 내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에너지 효율. “냉난방을 많이 해야 하는 공간은 쾌적하지 않다. 쾌적하지 않은 환경에서 업무 효율이 탄력받을 수 있겠는가.”
회사가 변하면 같이 변하는 공간
사옥의 건축을 맡은 이현욱 소장과 인테리어를 맡은 김재화 실장은 설계 당시 어떤 ‘여지’를 남겨두었다. 회사의 변화에 따라 공간도 쉽게 변모해나갈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 김재화 실장은 사옥 인테리어의 기본을 화이트 컬러와 우드로 설정하고 그것들을 반복 배치하면서 공간의 정갈함을 주었다.
“공간에 필요한 기본적 가구를 배치하고 간결하게 정돈한 디자인이 최적화된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해당 공간의 주인인 클라이언트가 무언가를 채워나갈 수 있는 디자인이기도 하고요.”
사옥 안의 모든 가구들은 벽이나 바닥에 부착돼 설치된 것들이 거의 없다. 모두 공간의 가변성을 염두에 두어 손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현욱 소장 또한 비우는 건축을 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노출 콘크리트 벽에, 나무 골조가 드러나는 실내공간, 그 자체가 인테리어가 되죠. 용도가 없는 공간, 모든 용도가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이들의 철학은 한발 앞선 창의력과 유연한 사고로 국내 기업 문화를 새롭게 쓰고 있는 제니퍼소프트에게 적합한 공간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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