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크는 수백 년을 살리라. 이것이 아마도 내가 베푼 가장 큰 일이리라(버나드 쇼의 ‘오크나무(Oak Tree)’). 장수와 행운을 줄 것이라고 유럽인들이 믿었던 오크는 진정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목가구 제작에서도 월넛만큼이나 널리 사용되는 목재이다.
인류의 문화와 함께 성장한 나무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종의 참나무가 번성할 수 있었던 건 조선시대부터 참나무를 귀하게 대접하고 관리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참나무는 다 타고 남은 숯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쓸모 많은 나무다. 코르크층이 두터운 굴피나무 껍질은 굴피집 지붕 재료로 요긴하게 쓰였으며 지금도 잡균 번식을 막기 위해 장을 담글 때는 항균작용이 탁월한 참숯을 함께 넣는다.
버섯의 제일미로 손꼽히는 능이버섯과 표고버섯도 오직 참나무에서만 자라는 것만 보아도 그 효능을 알 수 있다. 또한 참나무 땔감은 최고의 연료였고, 단단하고 질긴 물성 때문에 농기구의 몸통이 되었으며, 참나무에 달리는 도토리는 구황작물로 우리에게 각별한 별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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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규 목수의 오크 가구 |
독일은 베를린올림픽 당시 시상식에서 월계관을 씌워주던 관행을 깨고 참나무 잎으로 디자인한 ‘오크관’을 채택해 메달리스트 머리에 씌웠고, 꽃다발 대신 참나무 묘목을 수여했다.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였던 고 손기정 선수가 이때 받은 대왕참나무(Pin Oak)를 가져와 그의 모교인 양정고에 심은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독일은 가장 높은 단계의 훈장인 철십자훈장은 물론 동전에도 참나무 잎을 새겨 각별한 애정을 표현한다.
미국이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인 배경이 참나무 때문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당시 영국은 참나무를 비롯해 북미대륙의 자원을 엄격하게 통제했는데 이에 따른 불만이 퍼지며 독립전쟁의 불씨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범선 한 척에 쓰이는 나무는 대략 2000그루 정도로 추정되는데, 영국이 참나무를 가지지 못했다면 전 세계의 30%에 달하는 식민지를 거느리며 대영제국의 깃발을 휘날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거라고,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레드오크 VS 화이트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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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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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오크 |
일반적으로 목수가 기억해야 할 오크 수종은 세 종류 정도다. 레드오크, 화이트오크, 그리고 지역에 따라 프렌치오크, 유러피안화이트오크 등으로 불리는 잉글리시오크다. 이 세 수종은 각각 별도의 학명을 가진 고유종인데, 북미 목재업계에서는 크게 참나무 계열 나무를 레드오크군과 화이트오크군으로 분류한다.
레드오크와 화이트오크의 물성 차이는 횡단면의 나이테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도관(기공)의 구성에서 온다. 레드오크는 이 도관이 비어 있는 반면 화이트오크는 벌목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 나무에 있던 유세포가 타일로시스(tylose)라는 형태로 세포 확장을 하면서 도관을 채운다.
레드오크는 활엽수 중에서는 드물게 타일로시스가 도관을 메우지 않기 때문에 방수성이 떨어지고 외부 세균 침투에도 취약하다. 때문에 선박이나 통으로는 쓰지 않으며 실내용 가구재에 적합하다. 타일로시스의 유무는 두 목재의 비중과 강도 차이에도 영향을 미친다. 타일로시스가 도관을 매운 화이트오크가 레드오크에 비해 더 무겁고 강도가 세다.
레드오크와 화이트오크의 생장 속도에도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레드오크는 빨리 자라고 화이트오크는 천천히 자란다. 우리나라 산림과학원이 2014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육종 시험을 하고 있는 ‘루브라참나무’가 바로 미국에서 들여온 레드오크다. 속성수에 속하고 국산 참나무에 비해 줄기가 크게 자라기 때문에 경제수로 육성할 목적으로 들여왔다. 반면 화이트오크는 상대적으로 생장 속도가 느리다. 북쪽에서 자라는 화이트오크는 좀 더 느리게 자라기 때문에 나이테가 촘촘하고 재질이 더 단단해진다.
참나무 탄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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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 와인통 |
프랑스에서 와인이나 위스키통을 만드는 장인을 마스터 쿠퍼(Master Cooper)라고 부른다. 마스터 쿠퍼는 와인의 특성에 따라 참나무통를 고르는 데 일반적으로 유럽산 잉글리시오크를 최고로 친다. 캘리포니아에 진출한 마스터 쿠퍼들은 북미산 화이트오크로 배럴을 만들기도 하는데 목재의 숙성만큼은 프랑스에서 하는 경우가 흔하다.
참나무에 함유된 탄닌은 변색에도 관여한다. 목재 변색은 일반적으로 방사조직이나 수지면에 서식하는 변색균이 자체적으로 색소를 만들거나, 목재에 함유된 탄닌이 폴리페놀 같은 산화 효소에 의해 착색물질을 생성하면서 일어난다. 참나무의 탄닌은 철 이온과 반응하여 흑색의 탄닌철을 생성하는 방식으로 목재를 변색시키기 때문에 오크로 만든 도마를 세척할 때는 철 성분이 함유된 베이킹소다를 쓰면 안 된다. 커피나 홍차에 들어있는 탄닌은 치아 변색의 원인이기도 하다.
목재로서의 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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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선 가구디자이너 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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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경 가구디자이너 작 |
오크는 습기와 벌레에 강하고 내구성이 좋다.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해서 가구는 물론 건축 내장용 장식, 마루판 등 거의 모든 용도로 사용된다. 특히 오크는 수제가구 시장에서 인기가 많다. 자연스러운 색상과 단단한 물성 때문에 유행에 휩쓸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장점을 가진 오크의 또 다른 매력은 무늬다. 화이트오크의 변재는 담홍회색, 심재는 황갈색 내지는 담황갈색을 띤다. 레드오크는 화이트오크와 전체적으로 비슷하지만 조금 더 붉은 빛이 난다. 오크는 심재와 변재 사이의 구분이 명확하며 나이테도 뚜렷하다. 그래서 난잡하지 않고 정갈한 무늬를 지닌다. 본디 오크를 통칭하는 ‘참나무속(Quercus)’은 고대 라틴어로 ‘아름다운 나무’를 뜻한다. 사실 오크는 틀어짐과 뜯김이 심해 손이 많이 가는 나무다. 결이 억세고 수축팽창률도 높다. 그럼에도 가구 디자이너들이 오크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늬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세계의 오크 수종
북미에서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는 참나무과 수종은 레드오크와 화이트오크를 비롯해 아메리칸비치(American Beech), 아메리칸체스넛(American Chestnut), 탄오크(Tan Oak) 등이 있다. 유럽 역시 대표 수종인 잉글리시오크를 필두로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참나무를 키워 건축, 가구, 선박, 배럴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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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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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오크로 천장을 마감한 주방 |
일반적으로 화이트오크로 통용되는 아메리칸 화이트오크는 미국 동부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미주리, 버지니아, 테네시에서 가장 활발하게 조림되고 있다.
레드오크는 화이트오크의 횡단면 조직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졌지만 도관이 비어 있는 다공성 목재다. 때문에 화이트오크와 비교해 발수성에 취약하여 물이 잘 스며들고 강도도 떨어진다. 또한 부패에 취약한 수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물과 접촉하면 쉽게 얼룩이 생기므로 식탁용으로 쓸 때에는 표면 마감에 주의해야 한다.
유럽산 참나무를 의미하는 잉글리시오크는 유럽에 전역에 분포하며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되는 수종이다. 코카서스와 터키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온화한 기후에서 잘 자라고 추위에도 강한 특성 때문에 유럽은 물론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간 수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떡갈나무속에 포함되는 수종이다.
브라질리언오크 혹은 브라질오크로 판매되는 수종은 남미의 코스타리카에서 브라질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열대림에 비교적 폭넓게 분포하는 타우리(Tauary)란 나무다. 남미 각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 타우리는 큰 과일을 맺는 열대나무인 오예과에 속하며 심재와 변재의 차이가 적고, 레드오크와 색이나 무늬가 흡사해서 오크 대체재로 유통된다
※ 신간 <세상의 나무>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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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세상의 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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