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공간 ‘A-Frame Rethink’... 잠든 별장을 깨운 손길

강진희 기자 / 기사승인 : 2025-01-30 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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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만 해도 별장인지 아닌지 몰랐다. 갈라진 천장에서 가루가 떨어지던 곳이다. 두 명의 건축가가 그런 공간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뉴요커들을 불러들였다.

 

좋은 숙소에 묵을 일이 많지 않다. 대부분 보다 싼 방을 찾거나 어디 할인 이벤트 없나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는 운명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통제력이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다. 열심히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좌우간 1년쯤 일했다면 이런 예외적인 일과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명분으로 아주 가끔씩 통 크게 비싼 숙소를 지른다. 그러다 간이 커져서 하루 더 머무르는 용기까지 생긴다. 전망은 아름답고 이불의 감촉은 훌륭하고 햇살은 따뜻하니 눕든 서든 앉든 죄다 만족스럽다. 외출 계획을 날려버리고 종일 방에서만 게으르게 뒹굴기만 해도 충분히 행복하다. 카드 명세서 생각을 안 하면 그렇다.

낙원이 낙원이 아니던 시절 


 


여기도 그런 낙원이다. 술은 적당히 마시고 외출과 물놀이도 적당히 하고, 양호한 컨디션으로 공간 자체를 즐겨야 마땅한 곳이자 상호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다면 하루 정도 더 머물러도 후회 없을 탁월한 별장이다. 그러라고 집을 통째로 바꿔놨을 것이다. 위로 뾰족하게 솟은 남다른 외관, 계단을 길게 활용한 합리적인 동선, 햇살을 아낌없이 흡수하는 큼직한 창문, 어디서든 집 너머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넓은 거실까지, ‘A-프레임 리싱크’가 지금 유지하고 있는 모든 미덕은 약 50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자리 잡고 있는 곳은 롱아일랜드 남부에 위치한 작은 섬 파이어 아일랜드로, 뉴욕의 인파들이 휴가철이면 고민 없이 여장을 꾸릴 수 있을 만큼 접근성도 좋은 곳이다. 하지만 거길 찾는 사람은 없었다. 이는 A-프레임 리싱크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기 전의 이야기다.


건물이 취하고 있는 기본 양식, 삼각형 모양의 A-프레임은 1960년대 미국 별장 업계에서 크게 유행했던 스타일이라 한다. 건물 외벽보다 한참 튀어나와 있는 퇴창(bay windows) 역시 그 시절 건축의 습관이다. 여기도 당시에 지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유행이란 좀 민망해지기 마련이라 자연스럽게 사람들로부터 멀어졌고 그러는 동안 집은 별 볼 일 없는 수준을 넘어 엉망이 됐다. 별장을 ‘다시 생각할’ 대상으로 내정된 두 건축가, R 브롬리(R. Scott Bromley)와 제리 칼다리(Jerry Caldari)는 여기서 별장이 아닌 폐가 비슷한 것을 봤다. 두 명의 건축가가 건축주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관찰했던 별장의 모습은 이렇다. “천장에는 구멍이 뚫려 무언가 새고 있었다. 벽은 쪼개져 있었다. 네 개의 방은 어두운 데다 낡았으며, 실내 중앙에 탑처럼 세워진 높은 나선형 계단은 쳐다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새로운 설계를 맡은 스튜디오 브롬리 칼다리(Bromley Caldari)의 두 건축가는 건축주에게 방이 몇 개 필요한지부터 물었다. 한 개가 돼도 상관없다는 반응이 돌아오자, 오랜 기간 용도를 찾지 못했던 네 개의 좁은 방은 두 개로 줄었고 덕분에 별장은 어디에서나 빛과 전망을 즐길 수 있는 환한 공간으로 변했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데다 집 밖의 전망을 가리고 있던 나선형 계단을 허물고 전과 다른 완만한 회전을 준 것도 전망에 우선한 결정이다. 구멍 나고 갈라져 먼지만 흡수하던 구석구석의 상처는 엄청난 양의 삼나무 패널로 다 해결됐다. 천장과 바닥, 외벽과 내벽 모두가 피톤치드 가득한 나무를 입고 과거의 흠결과 작별했다.

50년 전의 유행과 소통하는 법 


 

 


유행이 막 지나간 자리에는 처음엔 민망함만 남지만, 거기서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빈티지나 올드 스쿨 같은 세련된 수사를 얻는다. 세상은 언제나 새로운 표현에 목말라 있고, 결국 더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역설이 시작된다. 하지만 과거에 매혹된다는 건 오늘날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다 양보할 수 있다는 뜻이 되진 않는다. ‘A-프레임 리싱크’가 이룬 변화도 그와 다르지 않다. 50년 전에나 세우던 안정된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원형을 그대로 놔두고, 내부를 동시대 입맛에 바꾸고 외부에 윤기를 가해 서로 다른 시대의 건축이 합리적으로 소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복고는 멋지지만 오래된 방식은 불편하다. 건축도 인간의 속성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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