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전인강 작가의 작품을 보면 이문재 시인의 <지금 여기가 맨 앞> 시 구절이 떠오른다. 전인강은 필리핀, 싱가폴, 라오스, 터키 등 6개의 나라를 떠돌았고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6개월 동안의 여정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녀는 마음 가는 대로 각국을 다니며 관찰했던 사물, 사람, 풍경을 하나의 이야기 보따리로 엮어 지난달 아원공방에서 다시 전시를 열었다.
“부지런히 작업하는 편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느낀 것들을 스케치해두는 습관이 있어요. 이번 전시는 말 그대로 저의 6개월 유랑기를 고스란히 드러내죠. 남들은 안락한 휴식이었을 거라고 말하지만 저에게는 고민으로 가득한 나날들이었어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끊임없이 생각했죠. 여행을 통해 바라본 저마다의 삶에서 느낀 게 많았어요. 특히, 낙천적인 필리핀 사람들을 보며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죠.”
‘유람’이 아닌 ‘표류’가 목적이었기 때문일까. 그녀가 포착한 외국의 풍경은 자유롭고 생기발랄하다. 작가는 낯선 곳에서 마주한 수많은 집에 어떠한 이야기가 얽혀 있을지 끊임없이 상상했다. 정처 없이 걸으며 마주친 염소, 닭, 소년, 아저씨, 구름 등을 마티카나무에 자유롭게 조각하고 그리고 채색했다.
필리핀에서 트라이시클을 타며 느꼈던 미안함, 모두가 잠든 밤에 찾아온 평온함, 볼거리가 너무 많아 신났던 순간. 그녀는 어린아이 같은 시선으로 순수하게 자신의 감정을 작품에 담았고 관객들은 마티카 나무와 오래된 거울, 액자에 담긴 이국적인 풍경에 친근하게 다가갔다.
“이번 전시는 관객들뿐 아니라 저에게도 편안함을 줘요. 여행이 아닌 ‘유랑’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나무의 모든 것이 끝에서 비롯되었듯이, 전인강에게도 끝은 시작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지금, 여기’와 정면으로 맞서서 준비한 작품들은 낯설지 않고 희망차다. ‘6개월 유랑기’ 전시를 통해 관객들이 순간의 즐거움에 집중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바람은 앞으로 그녀의 작품을 관통하게 될 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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