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물에 있어 경계는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다. 한계는 사물이나 능력, 책임 따위가 실제 작용할 수 있는 범위. 또는 그런 범위를 나타내는 선이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현대공예를 논함에 있어 혹자는 경계를 지우거나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경계를 지키고자 하는 자들을,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하물며 우매한 집단으로 격하하기도 한다. 이는 가짜고 거짓이다.
‘경계’는 주체를 위한 선별이자 개체의 독립성을 위한 변별의 수단이다. 하늘과 땅, 밝음과 어둠, 삶과 죽음, 남과 여는 분간의 한계가 명백하고, 범위와 선의 경계가 분명하다.
경계가 사라짐은 주체의 죽음이자 개체의 소멸이다. 이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과 사물을 대우주라는 하나의 공간에 예속시켜 존재 값을 지우는 것과 같다. 우주의 질서는 원자, 분자의 독립적 운동에 질서를 부여했고 그것의 결과 값에 의해 지속적 구성체를 이루도록 했다.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융합의 이름으로 분모를 이루거나 경계를 공유할 경우는 있어도, 이는 개체의 본질이 견고한 상태를 견지하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미술비평에서 공예는 어떤 장르의 부속물이거나, 동시대의 후미에 거처하는 근대적 장르로 이해하거나 치부하는 시선을 종종 경험한 적이 있다. 그들은 쉽게 말하고, 바로 망각한다. 예술에 있어 계급사회를 지향하는 듯한 의심을 낳는다.
언어의 변별은 속성의 구분이고 고유성의 획득이다. 공예, 미술, 문학, 디자인, 사진 등의 언어의 다름이 증거다. 이 모든 것을 예술로 통칭할 수는 있어도 한 통에 담아 비빌 수는 없다.
좋은 세상은 주체와 개체의 순수성이 확연히 드러나 독립적 자유함이 만연하는 세상이다. 그 속에 공유와 집단이 협력체를 이루고 개별성이 지켜나가는 한다. 나와 너를 민족의 띠로 묶거나 대중의 한 개체로 인식하는 것은 전체주의, 공리주의 사고방식에 다름 아니다.
혹 주변의 누군가가 경계를 지우자고 설득한다면 즉각 그를 경계하거나, 퇴출시켜야 한다. 회색분자일 수 있다. 모든 언어는 독립적 의미를 위해 탄생한 것처럼, 공예의 고유성을 침해하는 거짓 선동에 저항하고, 그런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고유성이 무너지면 경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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